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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장부에 도전장 던진 카페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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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 1983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출장 간 하워드 슐츠. 낯선 풍경에 눈이 뻔쩍 뜨였다. 골목마다 즐비한 카페. 거기서 달랑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커피는 식사 후 마시는 디저트’라는 통념이 여지없이 깨졌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경영진에게 커피만 파는 카페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물장사는 취미 없다”는 경영진의 일축에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가 직접 커피전문점을 차렸다.

 단지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사교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열어 주자는 그의 아이디어는 ‘대박’을 냈다. 꼭 2년 만에 그는 제 발로 걸어 나왔던 회사를 통째로 사들였다. 오늘날 세계 55개국에 1만7000여 개의 점포를 거느린 커피제국 ‘스타벅스’ 이야기다.

 # 27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한 커피전문점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카페베네’라는 낯선 브랜드의 커피점 개점 행사에 몰린 인파 때문이었다. 기존 미국 커피점과는 색다른 인테리어와 와플 맛이 신선했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도전장을 낸 카페베네는 한국 토종 브랜드다.

 2004년 감자탕 체인으로 ‘묵은지’ 돌풍을 일으켰던 김선권 대표. 그가 2008년 서울 천호동에 카페베네 1호점을 냈을 때 사람들은 ‘정신 나갔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커피시장엔 토종 체인은 물론 스타벅스란 ‘골리앗’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3년 만에 스타벅스를 제치고 국내 시장을 제패했다. 커피점에서 노트북과 하루를 보내는 ‘코피스족(커피와 오피스의 합성어)’의 마음을 훔친 덕분이었다.

 요즘 국내에선 대기업들이 앞다퉈 커피·베이커리사업에서 철수하고 있다. 수조원씩 이익을 내는 재벌이 영세자영업자의 밥그릇까지 빼앗느냐는 여론에 떠밀려서다. 대통령이 앞장서 “재벌 2, 3세는 취미로 할지 모르겠지만 빵집 하는 입장에선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호통쳤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도 바빠진 듯하다. 재벌가 식솔들이 계열사 지원을 등에 업고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을 벌이는 건 볼썽사납다.

 그렇지만 커피·베이커리는 영세업자 밥그릇이니 국내 대기업은 넘겨다볼 꿈도 꾸지 말라는 대통령 말씀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스타벅스는 이미 30년 전 ‘커피점=문화공간’이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글로벌 기업이 됐다. 토종 브랜드 카페베네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음을 입증했다. 설사 국내 대기업이 빠진다고 동네 빵집이 온전할지도 미지수다. ‘취미생활’로 하는 국내 대기업도 감당하지 못하면서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공룡은 어떻게 상대하겠나.

 혹여 한 줌도 안 되는 국내 대기업 베이커리 몇 곳을 철수시켰다고 영세자영업자 밥줄을 지켰노라 공치사한다면 그야말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대기업 손목 비틀기 ‘신공(神功)’은 이미 식상한 레퍼토리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재벌가 딸들의 취미생활 단속이 아니라 제2, 제3의 카페베네가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