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말하는 필리핀 단기유학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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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군이 필리핀 유학 동안 공부했던 교재를 꺼내 보이며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어머니 정태경(오른쪽)씨는 아들의 변화가 흐뭇하기만 하다.

내(정태경?41·여?서울 도곡동)가 아이(김기범·서울 구룡초5)를 필리핀에 보내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한계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형 영어학원을 꾸준히 보내 학원레벨은 높아졌지만, 실력이 늘고 있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한 반에 10명이 넘는 인원 때문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고, 쓰기에 대한 꼼꼼한 첨삭도 부족했다.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영어실력이 뒷받침 돼야 중·고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충고를 많이 들었다. NEAT 시험이 도입되는 등 영어 말하기·쓰기 능력을 중시하는 변화도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다. 아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걱정이 커졌다. 그런 때 필리핀 단기유학에 대해 듣게 됐다. 주변에서 성공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걱정은 됐지만 과감하게 결정했다. 그렇게 기범이는 지난해 3월부터 9개월 과정으로 필리핀 단기유학을 다녀왔다.

영역별 원어민 강사가 교육

 결과는 대만족이다. 출발 전 테스트로 봤던 SLEP(토플 주관사가 실시하는 비모국어지역 영어 평가 시험·67점 만점)점수는 38점이었다. 9개월 후 기범이의 슬렙 점수는 63점이었다. 만점에 가까운 점수다. 영어를 대하는 태도도 만족스럽다. 점수가 오르고, 자신감이 붙으니까 영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원 레벨테스트에서 30분 가까운 영어 인터뷰를 자신 있게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필리핀이기에 가능했던 몇 가지 성공요인이 있지 않았나 싶다.

 첫째, 1:1 또는 1:4 소수정예 수업 환경이다. 필리핀에선 오전 7시 기상해 하루 10시간이 넘는 고강도 수업을 듣는다. 여기서 인상깊었던 점은 수업을 학생들의 레벨에 맞게끔 탄력적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4명이 하도록 돼 있는 수업이라도 학생들의 레벨이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됐을 때는 1:1 또는 1:2로 수업으로 변경해 진행했다. 기범이도 매달 테스트를 거쳤다. 아이의 실력에 맞춰 1:4 수업을 1:2 수업으로 변경해줬다. 이렇게 학생을 중심에 두고 배려해줬기 때문에 기범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자신 있게 물어보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둘째, 미국·캐나다 원어민 교사의 발음지도도 큰 도움이 됐다. 솔직히 필리핀 유학을 결정하면서 영어발음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발음과 말하기는 미국·캐나다 원어민 교사가 맡아줬다. 필리핀 강사들도 현지 상위권 대학 출신이거나 미국유학 경험자들이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셋째, 수시로 학생의 레벨을 평가하고 경쟁심을 자극할 수 있었던 학습 환경도 중요했다. 학생들 레벨은 한 달마다 치른 슬렙 모의시험 성적과 수시로 이뤄졌던 분야별 강사들의 평가로 결정됐다. 항상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공부환경이었다는 것이다. 기범이에겐 이런 환경이 큰 도움이 됐다. 매달 목표 점수를 새롭게 정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친구들 사이 은근히 경쟁심리가 생기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저녁시간에는 ‘Special class’를 운영했다. 영어토론·토플(TOEFL) 공부를 하는데, 이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고, 들어가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 복귀 고려한 교육과정 맘에 들어

 많은 학부모들이 조기유학 후 한국 복귀를 걱정한다. 수학 때문이다. 필리핀은 그런 걱정을 덜 수 있다. 한국 수학선생님이 필리핀 현지에 머물면서 학생들 학년과 선행학습 진도에 맞춰 매일 2시간씩 수학을 가르쳐줬다. 한국 복귀를 생각한다면 수학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철저한 관리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한국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일·주·월 단위로 영어학습 진도와 수학공부 과정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필요한 땐 언제든 현지 책임자와 아이의 공부에 대해 상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관리되고, 언제든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특히 필리핀 유학 3개월 되는 시점엔 이뤄졌던 학부모 현지방문이 기억에 남는다. 유학 프로그램에 정식으로 포함된 과정이다. 자녀의 학습상황과 현지적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주말마다 다양한 야외활동과 스포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점도 고맙게 생각한다. ‘평일엔 힘들게 공부하고, 주말엔 맘 편하게 논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 기범이가 자연스레 공부습관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그저 숙제만 수동적으로 하던아이가 영어토론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수업 준비를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힘든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올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필리핀에 보내고 싶다. 이번엔 한 단계 더 높은 영어를 목표해야겠다.

<정리=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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