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외시 애착, 행안부의 인사권 집착 합작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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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05면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외교안보연구원 강당에서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 설명회’가 열렸다. 이 설명회에는 600여 명의 외교관 지망생이 모여 강당 통로와 복도까지 가득 메울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외교통상부 제공]

국립외교원이 3월 1일 문을 연다. 초대 원장은 2월 중 임명될 예정이다. 그런데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격’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추진했던 ‘외교아카데미’ 설립 방안과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정부 안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용두사미 된 국립외교원, 왜?

지난해 12월 초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립외교원 설립에 관한 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등 8명이었다. 이 전 총장은 국립외교원 설치추진위원장 자격이었다.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은 “현재의 정부 안은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 얼굴을 그리고만 격이지만 미흡하더라도 예정대로 출범부터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국립외교원이 찜찜하게 문을 열게 된 과정은 몇 년에 걸쳐 전개됐다.

외교관 임용제도 개혁은 2007년 대선 직후의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논의된 정책과제였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과거 기업인 시절 경험을 통해 외교관들에 대한 불신이 강했고 특히 고시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며 “외교관 선발 제도와 교육 방식을 개혁해 외교관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정권 초기부터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방안이 외교아카데미였다. 외교관이 될 사람들에게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지식과 외국어 능력, 실무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구체적인 설립 계획은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째인 2009년 초부터 추진됐다. 청와대의 주도로 전문가 워크숍과 해외 사례 조사 등 기초작업을 벌였다. 이를 토대로 그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이 공식 지시를 하기에 이르렀다. 정·관계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외교경쟁력강화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이 무렵이다. 이상우 위원장과 박선영 의원, 정옥임 의원, 오연천 서울대 교수와 외교부, 교육과학기술부, 행정안전부 고위 간부 등 1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다섯 차례의 회의를 통해 국립외교원 설립안을 만들었다. 이 안의 핵심은 ‘2년 교육, 석사학위 수여, 100명 정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외교부와 행안부 등이 실무 협의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은 석사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원 과정으로 하느냐, 비(非)학위 과정으로 하느냐였다. 이는 교육기간을 2년으로 하느냐, 1년으로 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관된 쟁점이었다.

외교부와 행안부 모두 학위수여에 반대했다. 외교부는 이론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실무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논의에 관여한 외교부 당국자는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할 경우에는 그에 맞는 커리큘럼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실무 교육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당장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학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대학원 과정 설치는 공무담임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외무 고시를 포함한 공무 시험은 응시자격에 학력제한이 없지만, 국립외교원이 석사 과정으로 운영될 경우 입학자격이 대졸자 이상으로 한정되어 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경쟁력강화위원은 “국립외교원 설립방안이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부처 이기주의와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는 처음부터 소극적이었고 현행 고시 제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고위 간부들이 모두 고시 출신인데, 고시에 문제가 많다고 하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얘기가 되지 않느냐. 이 때문에 정서적으로 거부반응이 많았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 떠밀려 어중간한 안을 만들어 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행안부의 경우는 공무원 선발이나 인사관리에 대한 권한을 놓치고 싶지 않은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했다”며 “만일 대학원 과정이 되면 교과부의 관할 감독하에 들어가게 되어 행안부의 권한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교부가 학위과정에 반대한 것은 해외 연수제도와 연관 있다고 설명한다. 외교아카데미에서 2년간 석사과정을 거친 뒤 임용되면 전반적인 교육기간이 길어져 추가로 1∼2년의 해외연수 기간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행 연수 제도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외교부의 판단”이라며 “국립외교원에서 1년간 방학 없이 3학기제로 공부하고 임용 후 1년간은 해외연수를 하는 게 더 교육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1년, 비학위 과정’의 시안을 내놓자 이에 반발한 홍정욱(한나라당), 송민순(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학위과정 설치를 명문화한 별도의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국립외교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정부 안이 관철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립외교원의 규모나 위상이 당초 논의된 내용보다 대폭 축소된 것이다. 외교경쟁력강화위 위원이기도 했던 박선영(자유선진당) 의원은 “적어도 임용 정원의 2배수를 뽑아 경쟁을 통해 외교관을 선발해야 한다”며 “정부 안은 현행 고시제도를 이름만 바꿔 존속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정욱 의원은 “외교부는 끝까지 외교아카데미 자체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고 청와대는 방향은 올바로 제시했지만 관료들의 반대에 부닥쳐 이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으로서 18대 국회에서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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