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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숨은 즐거움 찾기가 고객가치 경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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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24면

Q.고객 중심 경영은 어떻게 하나요? 고객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이란 무엇입니까? 고객 중시 철학이 영업실적을 보장합니까?

경영 구루와의 대화<11> 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④

A.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이듬해 봄 BMW는 서울모터쇼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이 모터쇼에 당시 참가하는 데 30억원이 들게 돼 있었습니다. 관람객이 100만 명쯤 몰리지만 세일즈 쇼가 아니라 2주 동안 차 한두 대 팔렸을 겁니다. 같은 시기에 3억원을 들여 서울 청담동의 작은 건물을 빌려 BMW 뉴 7 시리즈를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고객을 한 분씩만 초청해 모터쇼를 열었습니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모터쇼. 우리는 ‘클로즈드 룸 이벤트(Closed room event)’라고 불러요. 손님 입장에선 멀리 일산까지 갈 필요가 없고 북적거리는 전시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도 없겠죠. 도착해 샴페인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옆방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립니다. 그 방으로 옮기면 베일에 싸인 차가 눈에 들어오죠. 베일을 벗기면 새 디자인의 성능 좋은 신차가 있습니다. 10~20분 테스트 드라이브도 할 수 있죠.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이 행사를 한 달 동안 했는데 800명을 초청해 550대 팔았습니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해 9월 청담동에 ‘7 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를 열었습니다. 7 시리즈 고객은 아무 때나 들러 차 한잔 하고 잡지도 뒤적일 수 있는 고급스러운 공간이죠. 한쪽에 세계적 모던 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만든 BMW 아트카도 전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투자설명회, 미술품 경매, 한국 다도(茶道) 소개 모임 같은 다양한 행사를 수시로 엽니다. 역시 고객들이 좋아하더군요. 이런 서비스가 한두 달 만에 입소문을 타면서 7시리즈 판매가 급증했습니다. 이 라운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겁니다.
이런 것이 고객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이라고 봅니다. 우리 고객은 북적거리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모터쇼에 상대적으로 덜 가고 싶어할 거라는 데 착안했죠. BMW의 잠재 고객을 따로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겁니다.

2001년 뉴 7 시리즈 아시아형 모델이 처음 나왔을 때 본사가 배정한 물량의 세 배 이상을 국내에서 팔았습니다. 세계에서 넷째로 높은 판매실적이었죠. 한국에서 처음 출시된 모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니터의 자막이 영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본사에 한글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품 주문이 쇄도해 물량이 달렸습니다. 나중엔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 없어 100대를 화물기로 실어왔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최초와 최고를 선호하지 않습니까? 자동차 판매 역사상 차를 화물기로 공수한 건 이때가 처음입니다. 고객 가치를 우선시한 발상의 전환이죠.

BMW 중고차의 가치를 끌어올린 것도 고객 가치에 부합하는 전략입니다. 2005년 서울 양재동에 중고차 대형 매장을 낼 때까지만 해도 중고차 시장 여건은 지금보다 열악했습니다. 가격이 적정한지 알 길이 없고 총 주행거리나 사고기록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죠. 당시 우리는 신차 매장과 같은 분위기의 중고차 매장에 40대를 전시하면서 차마다 이력서를 붙였습니다. 여기에 연식, 총 주행거리, 사고 및 고장 기록, 자체 평가한 적정 가격을 명시했죠. 이렇게 중고차 인증제도와 중고차 금융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상담도 충분히 하고 1년간 추가 보증도 했습니다. 비즈니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결과 BMW의 중고차 가치가 평균 15% 뛰었습니다. 5년 후 가격이 새 차의 35~40% 하던 것이 50~55%까지 올랐어요. 자동차 회사는 중고차 가격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중고차 가치가 다른 브랜드들보다 높으면 새 차를 살 때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죠. BMW 미니는 3년 뒤 살 때 값의 70%를 받을 수 있습니다. 3년 동안 타고 팔아도 잔존가액이 70%나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 차 값의 30%만 있으면 3년을 탈 수 있다는 거죠. 5년을 탔는데 잔존가액이 20%인 차와 50%인 차 중 어느 쪽을 고르겠습니까? 성능·디자인·가격이 같다고 가정할 때 5년 동안 갚아 나갈 할부금이 80%인 차와 50%인 차 중 어느 차를 타시겠습니까? 중고차 관리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신차의 시장 가치가 더 높은 건 불 보듯 뻔합니다.

BMW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통해 맛보는 만족감도 고객 가치와 통합니다. BMW는 드라이빙의 즐거움과 성공의 표상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웁니다. 자신이 일군 성공, 자신이 추구하는 역동성과 도전의 이미지를 BMW를 통해 표출하는 거죠. BMW를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충족감이 생기도록 만들자는 거지요. 가격·품질이 단기적인 고객 만족 변수라면 브랜드의 역사성이라든가 제품 보유 자체의 즐거움은 한 차원 높은 장기적 고객 만족에 해당합니다.

세계 최대 아마추어 골프 대회가 BMW 골프컵 인터내셔널입니다. 55개국에서 약 13만 명이 참가합니다. 국내에서는 10회의 예선·본선을 거쳐 3명이 세계 대회에 나가요. 국내 참가자들도 이 대회를 아주 좋아합니다. 골프에 열성적인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들어맞는 프로그램이죠. 그런 뜻에서 BMW는 고객 라이프스타일의 동반자임을 내세웁니다.

우리가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만들어 고객들로 하여금 지식·경험의 멘토링, 재능 기부를 하게 하는 것도 고객 가치와 부합합니다. 재능을 기부하고 나면 그 재능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들로 채워집니다. 이를테면 사회적 필요에 부응했다는 느낌, 나누는 보람 같은 보상이죠.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좋은 일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러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여건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재능 기부를 하고 나면 BMW 오너로서의 자부심이 더 강해지죠.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은 1차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고객 가치를 향상시키는 데도 이바지합니다.

저는 고객이 제기하는 불만과 제안을 사업 아이디어로 전환시키려고 애씁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고객 가치가 올라가게 마련이죠. 기업의 생산 제품과 서비스에는 차별화된 철학과 가치관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BMW의 12가지 원칙 중 첫 번째가 고객 중심(customer orientation)입니다. 물건을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고유 철학과 가치관이 시장과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야 명실상부한 성공 기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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