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자녀 운영 빵집 사업 철수 도미노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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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호텔신라의 커피와 베이커리 사업 철수는 지난해 말부터 법률 검토를 벌인 끝에 26일 최종 결정됐다.

이날 오전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에서 이부진 대표와 고위 임원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영위원회에서다. 이 자리에선 홈플러스와 함께 운영 중인 아티제 블랑제리의 지분(19%, 홈플러스 81% 보유) 전량 매각 방침도 정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이 대표가 상생경영에 어긋나는 사업은 과감히 철수하자는 의견을 낸 걸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지난 연말부터 사업 철수를 검토했고, 최근 비난 여론이 거세져 서둘러 철수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호텔신라와 커피·베이커리 전문점인 아티제의 운영사 보나비 지분이 전혀 없다. 호텔신라는 국민연금(9.4%)과 삼성생명(8%), 삼성전자(5%)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보나비는 호텔신라가 100% 출자해 설립했다.

 호텔신라의 이번 결정이 다른 대기업 2, 3세들이 운영하는 사업 철수로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호텔신라의 사업 철수 결정 직후 범LG가(家)의 식품회사인 아워홈이 순대·청국장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워홈 측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9월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해 손을 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대명리조트로 유명한 대명그룹도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과 목동에서 운영하던 퓨전 떡볶이점인 ‘베거백’의 문을 닫았다.

 오너 2, 3세들이 베이커리 전문점을 운영 중인 롯데나 신세계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을 비롯해 잠실점 등 7곳에서 베이커리 전문점 ‘포숑’을 운영하고 있다.

또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전문점 ‘달로와유’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등 10곳에 입점해 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백화점 식품매장에 정당한 계약 절차를 거쳐 입점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에서만 영업해 대기업의 골목 빵집 진출 등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자녀들이 운영하는 빵집과 커피숍의 실태 조사를 지시했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기업들의 변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대기업 2, 3세의 행태가 계속될 경우 기업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져 기업 활동에 지장을 줄 것이란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대기업의 소상공인 업종 진출 행태에 대해 정말 화를 많이 냈다”고 전했다. 그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기업들이 제대로 대처 못 한다는 걱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서운함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중앙회는 “호텔신라의 제과·커피 사업 철수 결정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좋은 사례”라고 반겼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언론에 거명된 (롯데·신세계 등) 회사들의 해당 업체가 소상공인 생업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베이커리 운영 현황

▶ 호텔신라(삼성그룹) 커피·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 철수

▶ 롯데그룹 베이커리 전문점 ‘포숑’ 롯데백화점 본점 등 7곳서 운영 중

▶ 신세계그룹 베이커리 전문점 ‘달로와유’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 10곳서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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