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복지병’ 없는 스위스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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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우정
넥솔론 전략대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광을 가는 나라 중 하나가 스위스다. 스위스의 평온함과 사회적 질서, 그리고 훌륭하게 보전된 자연을 보노라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유로 통화존에 동참하지 않음은 물론 유럽연합에 가입도 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나라지만, 유럽 대륙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다른 나라로 가려면 잠깐이라도 스위스를 지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스위스를 빼어난 자연 환경과 영세 중립국, 시계를 비롯한 정밀기계 제작,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부유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의 표본으로 언론에도 자주 언급되지만, 그렇다고 스위스의 정치·경제·사회 환경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스위스가 대통령 중심제인지 내각 책임제인지조차 생각해 본 적 없이 막연히 지상 낙원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네들의 경쟁력을 보면 여타 선진국과는 사뭇 다른 것이 있다. 바로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우리가 본보기 삼아 배우려는 스웨덴, 영국 등의 기준으로 보면 스위스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스위스에는 국가 운영 의료보험도 없고,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자 하는 시스템조차 없다. 다른 선진 복지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복지병’ 문제가 없으면서도 가난의 대물림이 어느 나라보다도 적다. 어떻게 가능할까.

 스위스의 복지 설계는 두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가난을 완화시킬 방법과 비생산적인 복지를 지양할 방법이다. 두 가지 질문에서 도출된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복지의 제공은 필요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만 제공해야지 복지 혜택에만 의존하는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혜택을 받는 사람 또한 최선을 다해 다음 세대로까지 가난을 세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의 결과로 다른 유럽 선진국에서 흔히 보게 되는 국가 재정 파탄 사태는 적어도 스위스에서는 볼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 서방세계의 복지 시스템과 스위스가 목표로 하는 것을 비교해 보자. 대부분 선진국 복지의 목표는 같은 계층 안에서 그 혜택을 수혜자에게 얼마나 똑같이 잘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또 혜택을 받는 사람이 물리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같은 혜택을 전달해 주는 데 시스템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스위스는 복지에도 생산성 개념을 도입했다. 수혜자의 형편에 따라 혜택을 달리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또 달라진다. 고령층과 장애인에 대해서는 무제한 혜택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해 본인이 재활, 교육 및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소득 창출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혜택을 받는 이들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되갚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다른 나라와의 차이다.

 많은 이가 스위스의 복지 시스템을 보면서 세금 비중이 높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세계적으로도 개인 및 법인 소득세, 그리고 각종 재산세가 가장 싼 나라다. 어떤 주에서는 소득세를 전혀 부과하지 않는다.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답게 거의 모든 세금은 지자체 단위로 주민들의 의견이 수렴돼 정해진다. 그러다 보니 복지 수준 또한 작게는 몇백 명에서 많게는 몇만 명의 주민이 모여 결정을 하고 집행을 하는 구조다. 당연히 단지 복지라는 이름으로 예산이 낭비되거나 비생산적으로 쓰이지 못하게 주민들이 감시하고, 그 세금을 모아 복지 혜택을 주는 만큼 수혜를 받는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

 스위스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복지를 실현해 가고 있다. 단지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는 중앙정부에서 통제하는 복지가 없다 보니 복지정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아니면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작은 것이 불편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1인당 GDP는 7만5835달러로 가장 높고, 인플레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복지 계획은 없지만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나 복지 정책의 만족도는 가장 높다. 세금을 더 거두고 모든 것을 복지로 해결하려는 것이 결코 최선책이 아니라는 것을 스위스는 알려준다. 복지의 효율적 운영에 있어 초기 잡음은 감수할 부분이다. 스위스를 비롯한 선례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 제도를 구축하고 정착하는 일이 우선이다.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서 낭비적인 요소를 줄이면 보다 생산적인 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우정 넥솔론 전략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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