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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광기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연전에 '×× 군청'을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에 '×× GUN OFFICE'라는 영문이 병기된 탓으로 논란을 부른 적이 있다. '총'과 '관청'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거다. 물론 그 표지판에서 'GUN'은 영어단어가 아니라 '郡'을 음역한 것이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작으로 그 표지판을 참고해야 할 외국인들은 무슨 총기 보관소인 줄 알고 적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렇게 번역이 오해를 부르는 경우는 적지 않다. 외국 서적을 번역할 때 아무리 신경을 써서 정밀하게 옮긴다 해도 원문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trade union(노동조합)'을 '무역연합'으로 번역하는 건 상식 이하의 오역이라 해도, 예컨대 'my mother'의 정확한 번역어는 뭘까?

내 어머니? 아니다. '우리' 어머니다. 흘러간 팝송 제목 'Funny, Familiar, Forgotten Feeling'을 굳이 번역한다면 '재미있고 낯익고 잊혀진 감정'이 되겠지만 이 번역어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F라는 두운을 이용해서 재치있게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My Life with a Knife라는 책 제목, trick of treat이라는 할로윈 용어를 완벽하게 옮길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팝송 제목이나 관용어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학술 용어 역시 번역하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 말하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전매특허 용어인 '지식'과 '권력'도 그렇다. 지식의 원어는 savoir고, 권력은 pouvoir다. 이 두 단어는 원래 프랑스어의 조동사다. 영어의 can에 해당하는 조동사인데, 프랑스어에서는 '할 줄 안다'는 뜻으로는 savoir, '할 수 있다'의 뜻으로는 pouvoir로 구분해서 표현한다.

조동사라면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 말이겠는가? 푸코는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철학을 전개한 것이며, 그래서 사실 그의 철학은 지극히 일상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그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는 암호 투성이의 난해한 책이 된다.

푸코는 'savoir는 곧 pouvoir'라고 말한다. 우리말 번역서에는 이 말이 '지식은 곧 권력'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앎은 곧 힘'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그렇게 보면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사람은 프랜시스 베이컨만이 아닌 셈이다. 물론 영어에서도 프랑스어와 같은 구분이 없기에 savoir를 knowledge로, pouvoir를 power로 번역하지만, 우리말의 지식과 권력보다는 훨씬 일상적인 용어들이다.

'앎=힘'이라는 푸코의 등식을 알면 〈광기의 역사〉만이 아니라 푸코 철학의 태반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푸코가 말하는 '광기'란 그 등식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등식을 이해하는데 그 증명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랴?

알다시피 광기란 '미친 기운'이라는 뜻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러한 정의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광기를 그런 뜻으로 규정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중세에는 광기를 일종의 예지적인 재능으로 여겼다.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단지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으나, 광인은 지식을 깨지지 않은 완전한 공처럼 원형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차라리 중세의 광인으로 살았더라면!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광인은 최소한 본전은 건졌다. 당시 광기란 이성을 넘어선 영역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인은 특별히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1656년 파리에 종합병원이 생기면서부터는 광기를 윤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상태로 여기고 배제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광인은 사회에서 격리 수용되었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이 생겨난 19세기부터는 광기를 정신질환으로 취급하여 치료를 위해 광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이렇듯 광기와 광인은 언제나 존재해 왔는데도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지식(앎)은 시대마다 내용이 크게 달라졌으며, 급기야 현대에 들어서는 인신을 구속하는 권력(힘)으로 직접 작용하게 되었다.

그건 역사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유머가 있다. 질문: 약사는 왜 약을 갈아서 만들까? 답: 아스피린인 줄 모르게 하려고. 의사들이 쓰는 라틴어 처방전은 얼마든지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다. 판사들이 작성하는 판결문의 딱딱한 한자어투는 얼마든지 쉬운 말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전문용어는 전문적이기 때문에 '힘'을 가진다. 지식에서 비롯되는 그 권력의 단맛을 잊지 못해 그네들은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전통을 배양하고 강화한다.

혹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선량한 의사와 판사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식에 입각한 권력 행사의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거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남경태 (dimeol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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