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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전기료 인상 끼워넣기

중앙일보

입력

국제유가가 뛰면서 정부도 부산해졌다. 연일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석유비축량을 선진국 수준인 60일분으로 늘리고, 대체에너지 비율을 2%까지 끌어올리며 해외유전개발 사업비용을 연간 3천억원 수준으로 확충하고... "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의 보도자료철을 뒤적여봤다.

"2003년까지 2조1천억원을 투입해 비축유를 60일 수준으로 늘리고, 대체에너지를..." (걸프전 직후인 1990년 11월) , "2006년까지 3조2천2백억원을 투입해 비축유를 60일 수준으로 늘리고, 해외유전개발을..." (96년 말 동절기 한파 당시) .

최근의 대책안과 어쩌면 목표연도와 금액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동안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계획을 잡아놓고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결정을 미뤄왔던 가정용 전력요금 인상 계획안이 슬쩍 묻어서 포함된 정도다.

이에 대한 산자부 한 간부의 설명.

"사실 에너지대책은 유가가 급등하면 다들 왜 대책을 안내놓느냐며 난리를 치다가, 유가가 내려가면 관심이 없어집니다.

다들 왜 비싼 세금을 쓸데없이 비축유에다 묶어놓느냐, 해외유전개발은 성공률이 10%도 안되니 집어치우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라도 지금 같은 때를 활용해서 예산을 확보하고 준비를 해둬야죠. 그리고 전력요금 인상도 사실 이때 하지 않으면 언제 합니까?"

그러면서 그는 불과 한달 전 기자에게 분명히 "사실상 실패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없는 사업" 이라고 말했던 '대체에너지 개발 사업계획' 까지 서랍에서 꺼내 장관보고철에 끼워넣는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정부의 움직임은 마치 추석대목에 한몫 보려는 상인들의 행태와 흡사하다.'대목' 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해묵은 '대책' 들을 재탕, 삼탕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가 부산을 떨수록 그동안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의아해하는 국민들이 많다.

최근의 고유가 파동은 꾸준히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면서 에너지를 적게 쓰는 효율적 산업구조를 만드려는 노력을 정부가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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