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근로시간 단축, 고용 유연성 확대와 연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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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근로자들이 오랜 시간 일하지 못하도록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당 40시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근로를 인정해 최대 주당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서 제외해 사실상 주당 60시간 이상 근로를 용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로자 입장에선 초과근무수당으로 소득을 늘릴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선 숙련공을 활용해 신규 고용 없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해가 맞아떨어져 정착된 관행이다.

 정부의 방침대로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킬 경우 근로자들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어 소득이 줄어들고, 기업은 부족한 인력을 신규 고용을 통해 충원해야 할 부담을 진다. 현재 휴일근무가 관행처럼 돼 있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면 최대 6000명을 새로 채용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장기간 근로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다면서도 내심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근로시간 단축을 넓은 의미에서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의 한 가지 방편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세계 최장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근로시간을 줄이고, 고용까지 늘릴 수 있다면 이는 바람직스러울 뿐만 아니라 꼭 추진해야 할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바로 고용의 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기업의 일방적인 인건비 부담 증가로 귀착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경직된 고용구조 속에서 근로시간을 억지로 단축할 경우 신규 고용이 늘어날 여지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소득이 줄어든 기존 근로자들의 반발만 키울 소지가 크다.

 이왕 좋은 취지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할 작정이라면 차제에 이를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그래야 근로시간도 줄고 일자리도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