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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없으면 당하는 거잖아요” ‘고졸 알바’ 조카의 토로 … 청춘이라고 꼭 이렇게 아파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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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설 쇠러 시댁에 갔다 7월 입대 예정인 조카를 봤다. 그새 훌쩍 어른이 돼 있었다. 지난 한 해 조카는 ‘고졸 알바’로 살았다. 진학도, 취업도 여의치 않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과로로 몸이 축났고, 몇 번이나 임금을 떼일 뻔했다. 최악은 편의점 심야근무였다.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시급 3500원. 법정 최저임금(시급 4580원)이니, 주휴 수당이니 하는 건 가볍게 무시됐다. 근로계약서를 쓰긴 했는데 그게 더 고약했다. ‘3개월 이상 근무한다, 그 전에 관둘 땐 막달 임금의 절반 이상을 제한다, 후임자도 직접 구한다, 정산 시 돈이 비면 알아서 채운다, 식대도 휴식시간도 없다’. 조카는 “원래 힘 없는 쪽이 당하는 거잖아요” 했다. 이제 겨우 스물인데 포기라면 안쓰럽고, 분노라 해도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마침 트위터에선 한 어머니(@onl******)가 올린 선전포고의 글이 화제였다.

 ‘○○역 11번 출구 쪽에 있는 ○○○○카페 사장놈아! 내 딸이 12월 동안 일한 알바비 6만3000원을 내놓지 않으면 널 구워먹어버리겠다. 넌 내 금쪽 같은 딸이 만난 첫 사회였다. 그렇게 일 시켜먹고 알바비도 안 주고… 너 가만 안 둬!’

 대입 수시모집에 합격한 딸이 첫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임금을 못 받았단다. 어머니는 돈 몇 푼이 아니라 사회적 룰에 대한 딸의 신뢰가 금간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 나도 고학을 했다. 입주과외부터 가정용품 방문판매까지, 그만하면 꽤 고생한 청춘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아니다. 그 때 그래도 “학생이 고생 많다”는 격려의 시선이 있었다. 일거리 찾기도 지금보다 쉬웠다. 요즘은 대학생·고졸·10대 ‘알바’에 30대 취업 예비군까지 엉켜 혈투가 따로 없다. 노동의 값은 점점 싸지고 청년들이 느끼는 울분과 무력감은 독(毒)이 되어 쌓인다. 서울보다 지방, 대학생보다 고졸, 대기업보다 동네 가게 점원이 더 힘들다. 딱 내 조카 상황이다.

 이 친구에게 뭔가 힘 될 만한 게 있을까 웹서핑을 하다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하여 ‘감동 반전 알바’. 지난 14일 모 그룹이 주말 아르바이트인 줄로만 알고 찾아온 대학생 500명에게 뮤지컬 ‘루나틱’ 공연과 일당 5만원씩을 깜짝 선물한 내용이다. 행사 초기 지치고 무표정하던 학생들 얼굴은 공연 시작과 함께 꽃처럼 피어난다. 울고 웃고 함성 지르며 젊음을 발산한다. 그 변화가 너무 극적이라 외려 가슴이 아팠다. 참석한 이들에겐 분명 큰 위로가 됐으리라.

 아프니까 청춘이고,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 하지만 이유 없는 아픔까지 줄 필요가 있을까. 잠깐의 위로가 답이 될 순 없는 일. 조카가 제대할 때쯤엔 일에 값하는 밥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이기를. 기성세대의 어깨가 무겁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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