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취업해도, 못 해도 걱정 … 기초수급 대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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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촌동에 사는 장모(62·여)씨 가족은 이번 달부터 8년간 받아온 기초수급자 혜택을 못 받게 됐다. 이달 말 전문대를 졸업하는 딸(23)이 지난해 6월 중소기업에 취업하면서 가구 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자활공동체 사업장에서 일하며 버는 50만~70만원에다 딸 월급(140만원)이 생기면서 수급자 선정 기준선(4인 가구 149만5550원)을 넘어선 것이다.

 딸이 직장을 구하고 빈곤층에서 벗어났으니 반가워할 일인데도 장씨네 가족은 웃지 않는다. 의료비 지원이 끊기는 것 때문이다. 장씨는 10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데다 관절염·아토피·골다공증을 앓고 있어 자주 병원을 간다. 이런 경우 방법은 취업한 자녀가 분가(分家)하는 것이다. 자녀가 독립가구가 돼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85%를 넘지 않으면 부모가 수급자 자격을 유지한다. 강서구청 복지 담당 공무원 심모씨는 “상당수 수급자는 자녀가 분가하고 남은 가족들이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씨는 딸을 분가시킬 상황이 못 된다. 그는 “(큰딸에게) 방을 얻어줄 보증금도 없고 내보낼 생각이 없다”며 “딸이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서 생활비나 내 병원비로 쓸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 자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2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얼마 안 되는 소득 때문에 부모가 힘든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고교생·대학생들이 방학에 틈틈이 아르바이트(알바)를 해서 부모를 도우려다 소득이 드러나면서 정부 지원금이 깎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대구 북구 김모(51·여)씨는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학생 아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아들이 합격하면 좋긴 한데 그럴 경우 아들 월급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폐암 투병 중인 남편(60)의 치료비 지원이 사라져 감당할 자신이 없다. 김씨는 “2월에 경찰 시험에 일단 응시하라고는 했다”며 “시험에 붙어도 고민, 못 붙어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알바 소득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대학가에 비상이 걸렸다. 대학 3학년 송모(22·여)씨 가정은 어머니가 허리 지병 때문에 일을 못해 정부 생계 지원금(96만원)으로 산다. 생활비가 부족해 주말에 편의점 알바를 해서 밥값·차비를 번다. 구청에서 최근 생계 지원금을 48만원 깎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내 생활비라도 좀 벌려면 알바를 해야 하는데…”라고 한숨을 쉰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조사에서 소득이 드러난 대학생·청소년 등의 항의가 빗발치자 소득공제 폭을 넓히는 임시조치를 내놨다. 이들이 번 돈에서 30만원(청소년은 20만원)을 빼고, 나머지 돈의 70%만 소득으로 간주한다. 노인과 장애인은 30%를 공제한다. 상당수가 이 조치의 혜택을 봤다. 하지만 특례조치가 이번에만 적용돼 대학생들이 알바 현장을 떠나고 있다. 복지부 권병기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수급자 자녀들이 취업하자마자 가계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져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며 “성인으로서 자립할 의무와 부모 부양 부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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