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문 기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인권은 무엇보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의미한다. (학교폭력을 없애려면) 학생자치와 참여를 강화해 자율과 책임의 학급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귀 후 첫 공식석상인 20일 오전 기관장 회의에서다. 그는 “(학교폭력을) 가장 우선적 문제로 삼아 대처하겠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같은 날 오후 서울시의회를 방문해 이대영 부교육감이 제기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재의(再議) 요청을 철회했다.
곽 교육감의 폭력에 대한 인식은 타당하다.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인권의 출발이고 그러려면 학생 개개인의 자율과 책임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재의 요청을 철회하면서 착각을 한 듯하다. 원래 의미의 ‘학생인권’과 지난해 12월 진보 시민단체 발의로 시의회를 통과한 ‘학생인권조례’를 동일시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는 곽 교육감이 강조한 내용이 빠졌거나 소홀히 다뤄져 있다. 51개 조항엔 학생 권리는 풍부한데 책임과 의무에 대한 사항은 빈약하다. 휴대전화 소지, 성적(性的) 결정권(동성애), 두발 자유, 집회 허용 등 많은 권리가 열거돼 있지만 책무는 서너 줄에 불과한 것이다. 타인 권리를 침해하면 어떤 제재를 받아야 하는지는 언급조차 없다. 폭력 관련 조항도 ‘학생은 체벌, 따돌림, 집단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6조 1항)는 선언적 의미만 명시돼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조례의 3월 시행을 앞둔 학교 현장은 어수선하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조례가 시행되면 폭력 문제를 다루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교사 10명 중 8명(4~6일 중앙일보·교총 설문조사)은 “인권조례 제정·추진 과정에서 학교폭력이 심화됐다”고 답했다.
학생인권 보호는 중요하다. 문제는 균형 잡힌 시각과 진정성이다. 인권보호와 함께 학생들에게 책임과 의무, 상호존중과 배려정신도 가르쳐야 한다. 조례 제정 과정에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서울시의회나 업무 복귀 첫 작품으로 재의 요구 철회를 내놓은 곽 교육감의 행보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