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3인이 추천한 영화 3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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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처럼 저 예산 B급 영화 취향의 '삐딱이' 가 이렇게 위험한 소재의 작품을, 그것도 대작을 과연 제대로 요리해 낼 수 있을까. 흥행에 대한 지나친 부담 때문에 감독은 혹 자기만의 색깔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이번에도 고배를 마셔 아예 감독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하나….

영화를 접하기 전까지 품고 있었던 몇 가지 염려들이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영화는 이른바 작가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출연진의 스타성과 그들 상호 간의 빼어난 연기 앙상블,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재치 만점의 코믹 장치 등은 자칫 무거워지기 십상인 영화에 대중적 재미를 안겨주는데 손색이 없었다.

그 웃음 속에는 여느 영화에서 보기 힘든 페이소스가 베어 있었다.

채플린 영화나 〈반칙왕〉등에서나 어쩌다 발견되는 짙은 페이소스가, 또 좋은 영화라면 으레 지녀야 할 비판적 거리도 확보되어 있었다. 영화의 주제 및 문제의식을 음미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특히 송강호와 신하균이 완벽하게 소화한 북한군 두 병사의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는 단연 압권이었다. 북한을 미화했다는 오해는 그와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스위스에 입양된 소피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반면 영어에 서툴다는 사실은 영화의 성과에 비해 경직되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런 흠들이 영화의 미덕을 위협하진 못한다.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며 〈쉬리〉에 버금갈 대박감이라는 평가들이 나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U-571'

어쩌면 〈U-571〉 은 불행한 영화다.

조너선 모스토 감독은 전작 〈브레이크 다운〉(1997년)에서 그랬듯, 장르영화에 재능을 지닌 연출자다.

커트 러셀 주연의 〈브레이크 다운〉 은 사라진 아내의 행방을 쫓는 주인공이, 한 마을 사람들의 '짜고치는 고스톱' 판에 걸려들어 심리적 미로 속에 갇히는 스릴러영화였다.

해외에서 흥행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국내 반응도 밋밋한 편이었다. 영화 자체의 극적 긴장감이나 감독의 연출력은 출중했음에도 불구하고.

〈U-571〉 에서도 조너선 모스토는 폐쇄공간을 스크린으로 담아내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전쟁영화 중에서 'U-571〉처럼 설득력있는 캐릭터와 반영웅적 태도, 현실에 대한 탁월한 은유를 내포한 작품은 드물다. 국내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크게 주목하지 않은 점이 다소 의아할 정도다.

〈U-571〉 은 볼프강 페터젠 감독이 만든 'U보트'(Das Boot)에 대해 노골적으로 존경을 표한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수병들이 독일의 암호해독기를 탈취하는 와중에, 엉뚱하게 적들의 잠수함에 갇힌다는 설정도 기실 'U보트' 의 긴장감을 모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U-571〉 에서 부함장 타일러는 '괴물' 이 되어간다. 극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생사여부를 선택하고, 타인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저돌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영화라기보다, 인간 생존에 관한 냉혹하고 사실적인 드라마다.

이 영화를 감상한 뒤 슬그머니 진땀을 흘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아이즈 와이드 셧'

지난해 이 시대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마지막 영화의 제목처럼 그렇게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마치 자신의 길을 예견이라도 했던 듯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부부애정학개론' 같은 영화 한편을 남겼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인 작품을. 당대 최고의 스타 부부가 출연하여 적나라한 섹스신을 펼쳐 보인다고 하여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그러나 파격성과 선정성이 앞서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 보다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노장의 깊은 통찰력과 애정이 절절이 배어있는 성찰적 영화의 성격이 강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영화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여기에는 성인 가족들끼리라는 전제가 붙는다. 가치 전복적인 영화들만을 주로 만들어 왔던 큐브릭은 도대체 어떤 가족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1971년)를 만들 무렵이었다면 당연히 가족의 해체라는 극단론을 펼쳤겠지만 노장의 연륜은 한쪽으로 치우침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의사 하퍼드(톰 크루즈)와 그의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는 미국의 미남미녀로 남부럽지 생활을 영위해 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왠지 모를 틈새가 존재한다.

부부일지라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욕망 탓이었다.

부부간에 생긴 균열을 대충 봉합하여 강요된 화해를 모색하기 보다는 큐브릭은 저 무의식의 심연(深淵)을 향한 오딧세이로 새로운 관계정립을 꾀한다. 그 방법은 두 눈 질끈 감고 성의 팬터지에 동참하는 것 뿐이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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