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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가카XX? 국민 과반수가 뽑은 대통령인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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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러들의 수다’ ‘간첩 리철진’ 등을 만든 영화감독 장진(41)은 지난해 12월부터 시사 풍자 입담꾼으로 변신했다. 케이블채널 tvN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코리아’라는 시사 풍자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아 직접 출연하며 끼를 과시한다. 혼란에 빠진 한나라당으로부터 반사이익을 노리는 야권을 “정치가 스포츠인 줄 아는가. 한쪽이 잘못했다고 다른 한쪽이 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찌른다. 검찰의 각종 친인척 비리 수사를 놓곤 “정권 임기가 끝날 때면 검찰의 수사력이 놀랍게 향상되는 이유는 뭘까요?”라고 능청스럽게 묻는다. 인터넷과 SNS에선 그의 어록까지 돈다.‘풍자 메이커’로 나선 그에게 지난 17일 인터뷰를 통해 풍자의 원칙을 물었다. 그는 “풍자의 힘은 모두가 즐기는 데 있다”며 “풍자는 풍자로 끝나야지 선을 넘어 일방적인 조롱이나 인신 공격이 돼선 풍자의 힘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요즘 정치 풍자 전성시대다. 왜 그럴까.
“사실 풍자가 없던 시절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 등으로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광범위하고 빠르게 회자될 기술적 여건이 마련됐다. 또 세상이 좋아졌다. 예전엔 방송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정치 풍자를 하면 듣는 시청자들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숨이 멈췄던 순간도 있었다. 이젠 우리 사회가 풍자를 즐길 자세를 갖췄다고 봐야 한다.”

-풍자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하나.
“풍자는 대상·타이밍과 함께 수위까지 정확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가감하거나 풍자 대상이 아닌 걸 수위를 넘어 건드리면 풍자로서 살아남지 못한다. 예컨대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수감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대한민국 사법계까지 건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 1심, 2심 모두 유죄가 나왔는데 대법원에서 어떻게 그걸 뒤집겠나. 우리 법이 가진 한계에 대한 아쉬움과 법적인 재고(再考)를 바랐던 마음을 넘어서서 확정 판결 뒤 사법계를 쪼개 버리면 절대로 힘센 풍자가 되지 못한다. 대중이 마음속에 느끼는 옳고 그름을 위배하면 풍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풍자의 힘은 수위 조절에 있다는 얘기인가.
“풍자를 듣고 대중이 웃으면서 그 해학성의 뒤에서 뭔가를 곱씹게 만드는 게 좋다. 그런데 수위를 넘어서면 일방적 조롱이 되거나 누가 봐도 거부감을 느끼는 인신 공격이 된다. 이건 풍자성을 잃어버린 소리 나는 칼이 된다. 감각적이지 못한 풍자는 재미 없는 풍자, 안 한 것만 못한 풍자가 된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풍자는 풍자로서의 성격을 잃는다.”

-라면 이름인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를 활용해 ‘꼼수면’ ‘가카XX 짬뽕’으로 대통령을 비난한 사례는 어떻게 보나.
“가끔씩 너무 직설적인 표현에 혐오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도 국민 과반수가 뽑은 대통령인데 적당한 수위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직설적인 조롱이나 공격이 요즘의 대세 같다.
“그런 공격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즐겨야 한다. 예컨대 나꼼수는 선동적이고 구호적이면서 직설적 화법이 장기다. 그래서 그들만의 축제다. ‘우리 편 모여라’라는 식의 축제다. 하지만 TV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여기서 정치적·정파적 색깔을 드러내서 풍자한다면 적절치 않다.”

-풍자 소재를 찾는 게 쉽지 않겠다.
“토요일 생방송인데 당일까지도 소재를 찾아 뉴스를 기다린다. 대중이 뉴스에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판독해야 한다. 예컨대 비리 의혹처럼 대중의 관심을 끄는 사안이 발생해도 의혹만으론 다루기 어렵다. 법원 판결 전까지 지켜지는 무죄추정 원칙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개인들이야 SNS 등에서 의혹을 비판하고 까발릴 수 있지만 방송은 그럴 수 없다.”

-생방송 도중 애드리브도 어떻게 할지 협의하나.
“그렇다. 정치 풍자는 정말 많이 고민한다. 민감한 소재인 만큼 이를 다루는 언어까지 다 관계자들과 상의한다. 특히 출연자들이 패러디나 콩트로 정치 풍자를 즉석에서 하는 애드리브는 대단히 조심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한마디했는데 나중에 보니 치명적인 실수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풍자가 건강한 에너지로 기능하려면.
“풍자로 누군가를 살해할 수는 없다. 풍자는 공격을 받는 상대에게도 피할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더 나갈 곳 없이 공격하면 뛰어내리라는 얘기다. 이건 풍자가 아니다. 이런 위험한 풍자는 풍자 문화 자체를 경직시키는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가장 건강하면서 이상적인 풍자는 풍자 대상까지 대중의 반응을 이해하면서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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