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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총제, 박근혜·한명숙 과거엔 없애자 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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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질적인 재벌 규제의 신호탄이냐, 재벌 때리는 시늉을 하는 거냐.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에 대한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태도를 두고 당 내외에서 나오는 의문이다.

 논란은 19일 오찬 간담회 때 박 위원장의 ‘보완책 마련’ 발언에서 비롯했다. 이를 계기로 당내에선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분과위는 20일 회의에서 “재벌의 과도한 탐욕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실효적 정책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권영진 의원이 전했다.

 여러 세부 대책 중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게 출총제 보완이다. 이런 움직임은 과거 야당 시절과 딴판이다. 박 위원장은 야당 대표 시절 출총제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를 대선 공약으로도 제시했다. 한 측근은 “원래 박 위원장은 출총제가 국내 기업을 역차별한다는 생각에서 폐지를 주장했지만, 요즘 재벌들이 손쉽게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고 인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박 위원장에 강력히 입력시킨 건 경제민주화론자인 김종인 비대위원으로 꼽힌다. 다만 출총제의 부활은 아니고, 이미 폐지된 데 따른 대기업 규제공백을 보완하겠다는 게 박 위원장의 뜻이라 한다. 비대위 내에서도 출총제 부활 자체에 대해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1987년 처음 도입된 출총제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이 회사 돈으로 다른 회사 주식을 사들여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순자산의 40%)하는 게 핵심이었다. 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문어발식 확장을 막자는 취지다. 그 뒤 폐지→부활→완화→폐지 등의 우여곡절을 거쳤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출총제를 금산분리와 함께 ‘기업 프렌들리’를 저해하는 대표적 ‘악법’으로 분류해 2009년 폐지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도 취임 직후 출총제 부활을 당론으로 내걸었다. 그런 한 대표도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땐 “다음 정부에서 출총제를 폐지하고 대기업집단법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선거철을 맞아 여야의 말 바꾸기에 출총제 논의가 춤을 춘 것이다. 익명을 원한 한 경제학자는 “출총제는 이름과 달리 있으나 없으나 재벌에 큰 족쇄나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상징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대기업의 성장을 방해해 성장률을 낮추고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고 출총제 부활에 반대다. 정부 내에서도 출총제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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