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vs 서울역 … 누가 설 식탁 점령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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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박근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연평도 해병부대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사병들과 포옹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쇼잉(Showing·보여주기)’과 ‘텔링(Telling·말하기)’. 설을 앞두고 문학작품의 기법이 정치권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4·11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어진 설 연휴는 정치인들에게 민심을 수렴하고 확장하는 중요한 시기다. 짧지만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표밭 다지기’가 가능한 기간이다. 이를 앞둔 정치인들의 행보 속에는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는 설 밥상에 유리한 이슈를 올리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

 ‘쇼잉’ 측면에서 한나라당은 ‘안보’와 ‘쇄신’, 민주당은 ‘민생’과 ‘유지(遺志)’를 내세운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연평도 해병대 부대를 방문했다. 검은색 패딩 점퍼 차림으로 간 그는 현장에서 국방색 야전 상의를 덧입고 해병대를 상징하는 팔각모를 썼다. 그러곤 해병대원 10여 명을 일일이 껴안아 줬다.

  연평도 방문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진 상황에서 야권 대선 후보에 비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안보 이미지’를 더 강화하기 위한 행보다.

 박 위원장은 또 이날 자신의 새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하고 이름도 ‘수첩공주’에서 ‘친근혜’로 바꿨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쇄신과 변화가 필요한 새해를 맞아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비롯해 국민 여러분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친근혜’라고 이름을 바꾸려 한다”고 밝혔다.

민생 한명숙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설 민심 잡기에 나섰다. 20일 서울역에 나온 한 대표가 귀성객에게 설 인사를 한 뒤 어린이를 안아주고 있다. [김형수 기자]

 민주통합당은 시장과 묘지를 오가면서 ‘민생’과 ‘유지’를 받드는 수권 야당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16일엔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18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과 부산 재래시장을 갔다. 19일엔 5·18 민주묘지와 광주 시장을 향했다.

 민주통합당은 특정 지역의 고정적 지지에 의존하는 지역당 이미지를 벗어나 전국 정당으로 커졌다는 점도 부각시키려 했다. 20일에는 대전시당에서 최고위원회의 열었다. 최고위원회의를 부산과 광주에 이어 연일 지방에서 연 것이다. 한명숙 대표는 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이 지방을 버리고 수도권만 끌어안아 세종시가 변질되고 축소됐다”고 날을 세웠다.

 여야 지도부는 대목을 앞두고 각종 정책과 공약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이미지가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보여주기’라면 정책은 ‘말하기’(텔링)로 다가가는 방식이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19일 저소득층 세입자 100만 가구의 전·월세 대출이자를 낮추고, 모든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1.5%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비대위는 또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발표부터 해놓고 정부와의 협의나 재원 조달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나중에 하겠다는 자세다.

 민주통합당은 ‘검찰개혁’과 ‘재벌개혁’ 등 이른바 ‘혁(革)’자 돌림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18일 부산에서 한 대표는 “재벌 개혁과 검찰 개혁, 경제 민주화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한 치도 주저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 대표는 “소득 상위 1%에 대해 증세할 수 있는 법을 개정해 1조5000억원의 세수를 얻어 99%의 서민과 나누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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