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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전 대통령 CIA 첩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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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쟁 범죄로 국제법정에 선 찰스 테일러(64·사진)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미국 정보기관의 첩자로 일했다고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최근 보도했다.

 글로브는 미국 정보자유법에 따라 6년 전 공개를 요청해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테일러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인 1980년대 초부터 수십 년간 미국 정보 당국과 관계를 유지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2009년 전쟁범죄 법정에서 “85년 미국 보스턴 감옥을 탈출할 때 미 공무원들이 도와줬다”고 진술한 이래 미국 정보기관과 테일러의 유착관계에 관한 루머가 돌긴 했으나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테일러는 97년부터 2003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했다.

 신문은 미 국방부로부터 ‘테일러가 미국 정보기관들을 위해 수행한 역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수십 년에 걸쳐 작성된 최소 48건의 비밀 문건에 담겨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테일러가 미국 정보 당국에 협력한 기간이나 범위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신문은 그가 지난해 죽은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은 확인했다고 전했다. 카다피는 88년 팬암기 폭파 등 각종 테러 활동을 지원해 미국의 집중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카다피의 지원을 받는 등 리비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테일러는 미국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인물이었다.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이뤄지는 각국의 무기 밀매와 옛 소련의 활동을 파악하는 데도 그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테일러는 지배층인 미국계 라이베리아인 가정에서 태어나 72년부터 미국 대학에서 공부했다. 라이베리아로 돌아간 뒤 미국이 지원한 돈을 횡령한 혐의로 미 보스턴에서 옥살이를 했다.

85년 탈옥한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97년 대통령이 됐다. 테일러는 이에 앞서 89년부터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이웃나라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에 무기를 댔다. 그 대가로 그는 다이아몬드 등을 얻어 축재했다. 테일러는 14년을 끈 전쟁에서 민간인 팔다리를 절단하는 등 악행을 저질러 17가지 전쟁 및 반인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여자 어린이까지 차출해 전쟁에 몰아넣기도 했다.

2003년 미국 등의 압력으로 실각했으나 미국의 동맹국인 나이지리아 남동부 칼라바르에서 호화로운 망명생활을 즐겼다. 이번에 그가 미국의 정보원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미국이 배려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테일러는 2006년 체포돼 현재 네덜란드 소재 국제형사재판소 ‘시에라리온 특별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테일러가 세계적인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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