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카톡 되고 문자는 금지, 기묘한 선관위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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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길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를 붙잡고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대부분 “돈을 내고, 안 내고의 차이” “일반 휴대전화에서 되고, 안 되고의 차이” 정도로 대답할 것이다. 문자로 된 정보를 주고받는 기본 기능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카카오톡은 전자우편(e-메일)이지 문자메시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 매체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규제하는 공직선거법 93조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의 규제 대상에 SNS·전자우편 등을 포함해선 안 된다는 게 골자였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이른바 ‘폴리테이너(정치적 발언에 적극적인 연예인)’가 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트위터에 ‘인증샷’을 올린 게 선거법 위반 논란을 불러왔는데, 이런 논란을 원천적으로 불식시키는 결정이었다.

 문제는 선관위가 이 결정 이후 규제를 대폭 풀면서 생겨났다. 선관위는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는 스마트폰이라는 ‘컴퓨터 지원 기능’을 이용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전자우편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했다.

선거일을 포함해 언제든 카카오톡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문자메시지는 여전히 상시 선거운동을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에선 “선관위 뇌 구조가 특이하다” “이상한 선관위” 등의 글이 쏟아졌다.

 이런 이중 잣대는 또 다른 모순을 불러온다. 투표일에 거리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처벌받지만 SNS나 카카오톡에선 얼마든지 지지 후보 ‘퍼나르기’를 해도 상관없게 된다. SNS 여론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당과 불리한 정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당 간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당장 여야의 반응은 확연히 갈렸다. “SNS 규제를 풀라”며 선관위를 압박하던 민주통합당은 잠잠하고, 조용하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까지 나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자 선관위는 “문제가 있으면 법을 바꿔야 한다”며 정치권에 공을 넘기고 있다.

 선관위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정치권 스스로 게임의 룰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 결정은 SNS 규제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됐다는 것이었지 모든 고삐를 다 풀어버리라는 취지는 아니었다. ‘날아가는 현실’과 ‘기어가는 선거법’의 괴리를 메우는 게 선관위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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