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주 ‘데자뷰’… 뻥튀기 공시 → 게이트 비화 → 개미들 쪽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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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코스닥업체 대원SCN은 2001년 5월 콩고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공시를 했다. 연초 2000원대에 불과하던 주가는 7500원으로 급등했다.

검찰은 이 회사가 허위 공시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결국 김대중 정권 말기 권력형 비리 사건인 ‘최규선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2002년 이 업체가 최규선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에게 10억9000만원을 건넨 것이 밝혀지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인 2005년엔 ‘오일 게이트’로 떠들썩했다. 핵심 인물인 전대월씨는 2007년 5월 자동차 부품회사 명성을 인수한 뒤 회사 이름을 KCO에너지로 바꾸고 자원 개발에 나섰다. 이 회사 주가는 잇따라 상한가를 기록하며 6배 치솟았다. 그러나 전씨가 사업성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자 주가는 급락했고, 2010년 5월 결국 증시에서 퇴출됐다.

 데자뷰(dejavu)-. ‘다이아몬드 개발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 씨앤케이를 두고 과거를 떠올리는 금융투자업계 인사가 많다.

 우리투자증권 신성호 리서치본부장은 “껍데기만 달라졌을 뿐”이라며 “2000년대 초반에도 보물선·금광 관련 루머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먹튀’하는 자원개발주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검증되지 않은 자원개발 호재로 주가를 올린 뒤 비리가 드러나고, 결국 개인 투자자들만 쪽박을 차는 상황전개가 과거 자원개발주의 운명과 판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증시에서 자원개발주는 ‘먹튀’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코스닥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원개발주 투자 열풍이 불었고, 이에 따라 사업목적에 자원개발을 추가하는 기업이 잇따랐다. 하지만 대주주가 부당이득을 챙기는 사례가 빈번했고, 횡령 사건 등으로 인한 상장폐지도 속출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자원개발 내용을 공시한 28개 상장사 중 18개사(64.3%)가 증시에서 퇴출됐다. 15개사에서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가로챈 횡령 사실이 적발됐다. 자원개발 공시 전후로 대표이사가 바뀐 기업은 12곳, 최대주주가 변경된 곳도 11곳에 이른다.

 이런 ‘뻥튀기’ 자원개발 기업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으로 주로 해외에서 개발권을 따낸다. 파푸아뉴기니·카자흐스탄 등 일반인들에게 낯선 신흥국이 주를 이룬다. 해당 국가의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거나 관련 정보가 적어 국내 투자자들을 속이기 쉽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각종 조회공시 의무가 까다로운 모회사가 아닌 자회사의 이름을 빌려 공시를 하고, 자원개발이 본업이 아닌 기업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개발하는 자원이 유전·가스전이 주였다면 요즘은 금광·구리·아연 같은 광물로 바뀌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자원개발의 성공 확률은 로또에 비견될 정도로 낮고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그러나 큰 수익을 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원개발을 내건 모든 기업이 ‘먹튀’는 아니다. 실체가 드러난 사업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낸 기업은 증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날·현대종합상사·SK네트웍스·현대상사·LG상사·한국가스공사 등 주로 대기업 계열사로 주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 미국-이란의 갈등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이들이 확보한 자원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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