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대출 하나로 모아 ‘신용불량’ 탈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신용등급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자영업을 하는 이대한(40·가명)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5등급이었다. 생각 없이 신용카드 할부로 물건을 사고, 현금서비스도 여러 번 받는 사이에 갚아야 할 카드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를 갚으려고 지난해 3월 은행에서 3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았다. 4월엔 저축은행에서 400만원, 그 다음달엔 200만원을 더 빌렸다. 중간에 카드 값이 40만~50만원씩 열흘 정도 연체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신용등급이 8등급으로 추락했다. 이제 은행은커녕 저축은행 문턱도 넘기 어려워졌다. 지난해 10월 개인신용평가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문을 두드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무분별한 소비를 해왔습니다. 대출이나 카드는 되는 대로 받았고, 연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요. 이젠 이런 소비생활은 물론 신용 하위등급에서도 벗어나고 싶습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KCB가 두 달간 집중적으로 코치해 주는 ‘신용관리 체험단’ 25명에 뽑혔다. KCB 김은경 전문연구원은 이씨의 잘못된 습관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대출을 좀 더 요령 있게 쓸 필요가 있었다. 신용평가에서 대출은 금액뿐 아니라 건수도 중요하다. 소액으로 여러 건 대출을 받는 것보다는 목돈을 한 번에 빌려서 꼬박꼬박 갚는 게 더 낫다. 일단 연이어 받은 3건의 대출 중 하나라도 없애는 게 시급했다.

 아직 갚지 않고 남아 있는 신용카드 할부금이 300만원까지 쌓인 것도 문제였다. 신용카드도 빚이다. 특히 결제하지 않은 카드 할부금과 현금서비스 이용금액은 ‘카드부채’로 잡혀 신용평점을 깎아먹는다. 가급적 할부보다는 일시불로 신용카드를 쓰는 게 좋은 이유다. 아직 할부 이용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그 전에 미리 갚아 카드부채를 없애야 했다.

 이씨는 아직 대출 건수를 줄이진 못했다. 대신 남은 카드 할부금을 미리 갚아 줄여 나가는 중이다. 카드부채가 100만원 아래로 줄어들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7등급으로 한 계단 오른 것이다.

 KCB의 신용관리 체험단엔 8등급부터 3등급까지, 20대 사회초년생부터 50대 가장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이 중 9명(36%)이 두 달 만에 신용등급이 한 계단 이상 올랐다. 놀라울 정도는 아니지만 희망적인 결과였다.

 이들은 그동안 잘 몰랐던 신용관리 요령을 배웠다. 흔히 신용카드를 적게 쓰면 무조건 좋은 줄 알지만 오히려 적절한 이용은 신용에 득이 된다. 회사원 김지연(28·여·가명)씨도 그런 경우였다. 학자금 대출로 한때 6등급이었던 그는 지난해 말 3등급으로 올랐다. 신용카드를 매월 10만원 안팎으로, 할부는 최소화하고 꾸준히 쓴 게 비결이었다.

 과거에 등급이 안 좋았다고 꼭 상위등급으로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KCB에 따르면 신용불량자가 연체금을 갚으면 보통 2년 안에 5등급까지 오른다. 이 정도면 은행대출이 가능한 수준이다. 다만 그 위로 올라가기란 만만찮다. 한 번도 연체한 적 없는 사람이 70%에 달하기 때문이다.

 체험단 최고령자인 김민국(53·가명)씨는 2006년 9월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9등급)’였지만 지난해 말 3등급으로 뛰었다. 7000만원이란 적지 않은 주택담보대출이 있었지만 거치식에서 분할상환으로 바꿔 꼬박꼬박 갚아나간 게 비결이었다. ‘믿을 만한 사람’임을 보여줄 만한 긍정적인 기록을 차분히 쌓은 것이다. 5년이 지나면서 과거 연체기록이 지워진 것도 한 번에 두 계단이나 뛰어오른 이유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