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색깔 119가지, 오직 로에베만 만들 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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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에베의 맞춤 가방 서비스는 아이패드로 미리보기 할 수 있다. 색상과 각기 다른 가죽의 조합이 어떻게 조화될지 주문 전 확인하는 방법이다.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는 1846년 마드리드에서 시작했다. 독일의 가죽 장인 엔리케 로에베 로스버그가 “따뜻하고 정열적인 나라 스페인이 맘에 들어” 정착한 것이 시작이다. 덕분에 로에베는 이탈리아·프랑스가 판치는 명품업계에서 드물게 스페인을 고향으로 삼는 브랜드다. 때로 ‘스페인의 에르메스’라 불리기도 할 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상표로 알려져 있다. 세월이 지나며 영업에 어려움을 겪던 이 브랜드는 1996년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에 인수되면서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7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패션 디자이너 스튜어트 베버(39)를 만났다. 그는 “166년의 전통, ‘메이드 인 스페인’, 영국인인 나, 독특하고 특색 있는 조합이 지금의 로에베”라고 말했다.

2 주문한 사람 이름을 새겨 넣어 가방에 다는 자물쇠와 메이드-투-오더 가방의 시제품.
3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 가방 장인의 작업실을 재현한 곳에서 포즈를 취했다.

  스튜어트 베버는 로에베란 브랜드를 한마디로 “가죽”이라고 정의했다. “언제나 그래왔다. 그래서 올봄 시즌부터 가죽과 색상을 고객이 직접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메이드-투-오더(made-to-order, 맞춤 서비스)’ 가방을 새롭게 내놨다. 전통적으로 로에베가 강점이 있는 분야다. 수많은 다른 명품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대개의 유럽 고가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로에베 역시 왕실과 귀족들이 사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9세기 스페인 왕가를 위해 많은 수의 스페인 장인이 일을 했지만 이들로도 수요가 모자라 독일 출신 장인들까지 합세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발군의 실력을 보여 ‘왕실 납품 장인’이란 인정을 받은 게 로에베다.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에서 유서 깊은 가죽 제품 원료 생산지이자 가공지로 명성을 이어왔다. 베버가 강조한 가죽 제품 전통은 스페인 왕가의 몰락 이후 명성이 퇴색해 갔지만 LVMH가 브랜드를 인수한 후 다시금 부활하는 중이다.

 베버에게 ‘이미 다른 명품 브랜드에서도 맞춤 가방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패드를 꺼내들었다. “맞다. 하지만 로에베처럼 많은 수의 가죽, 다양한 색상을 조합할 수 있는 브랜드는 없다. 이 같은 대규모 서비스는 로에베가 처음이다. 그리고 아이패드로 주문 제작될 ‘나만의 가방’을 먼저 볼 수 있다.” 그의 말대로 로에베의 맞춤 가방 서비스는 완성품의 색상 조합을 아이패드 응용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로에베 맞춤 가방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손잡이나 이음매 부분, 가방의 몸통 등 부분마다 다른 색상 가죽으로 조합하는 것이다. 송아지 가죽, 타조 가죽, 양가죽 등을 포함해 총 14가지 가죽에 119개 색상으로 ‘나만의 가방’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이뿐 아니라 로에베의 또 다른 강점은 가죽으로 된 재킷 등 의류도 가방과 같은 형식으로 맞출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로에베는 매년 맞춤 가죽 의상을 위한 ‘메이드-투-오더 컬렉션’도 발표하고 있다. 봄·여름과 가을·겨울로 나눠 1년에 두 번 여는 패션쇼에서 이 부분을 따로 떼어내 주문 가능한 신상품 디자인을 소개한다. 베버가 합류한 다음 로에베의 맞춤 가죽 의상은 색상이 굉장히 밝고 현란해졌다. 베버는 “푸른색도 다 같은 푸른색이 아니고 노란색, 핑크색, 붉은색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햇살처럼 밝고 화사한 색상으로 만드는 건 젊은 층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만 고수하다 보면 브랜드가 한곳에만 머무르게 되는데 이것은 때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로에베 같은 명품 브랜드엔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에베를 대표하는 가방 ‘안테 오로 아마조나(Ante ORO Amazona)’는 60여 조각의 가죽을 이어붙여 만드는데 스페인의 가죽 장인들이 100년 넘게 지켜온 기술을 사용한다. 가방을 뒤집어도 안팎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한 기술이다. 이처럼 제작 방식에선 전통을 지켜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더라도 색상 같은 표현 방식에선 젊은 세대도 좋아할 수 있는 요소를 끊임없이 추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980년대의 전설적인 수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도, 요즘 할리우드 스타인 20대의 레이튼 미스터도 로에베 가방을 든다”면서 “밝고 경쾌한 터치가 전통과 결합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가방을 고를 때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본래 소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가공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인터뷰 끝에 전한 좋은 가방을 고르는 요령은 이랬다.

 “반짝반짝 빛나는 게 유행이라고 해서 너무 번쩍거리게 가공한 가죽 가방은 고르지 마라. 아름다운 가죽 가방이란 소재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만든 것이다. 여성에게 가방이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다. 쉽고 편하게 들면서도 아름답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방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고 가방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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