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설 대목이 사라진 남대문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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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세초부터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표정이 무겁습니다. 설과 중국 춘절 연휴가 겹친 대목이지만 손님들이 쉬 늘지 않는 탓입니다. 모두들 죽겠다고 하소연입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30년째 옷가게를 했다는 한 사장님은 “내수 손님이 없어 큰일이야. 옛날에는 설 때 최고 잘됐는데 다 옛말”이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모두 손님을 뺏어갔다는 볼멘소리도 들립니다. 실제 남대문 시장 바로 옆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식품관은 설 준비에 나선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양손 가득 짐을 든 일본·중국 관광객을 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지근 거리에 있는 두 시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을 총괄·관리하는 ‘남대문시장주식회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최근 영세상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릿세를 받았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남대문시장주식회사 관계자는 “춘절이라고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다. 남대문시장은 식당·점포가 영세해서 단체로 오는 중국 관광객을 받기 힘들다”고 설명합니다. 대형마트·백화점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각종 증정품을 나눠주고 대대적 마케팅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노점용 손수레를 노점상에게 강매한 혐의로 입건된 남대문시장 노점상연합 ‘다우리회’ 김모(58) 회장은 되레 기자를 붙잡고 “(이번 사건은) 노점상과 상가 내 점포 간의 자리 싸움에서 비롯됐다. 나는 억울하다”고 항변하기 바쁩니다. 시시비비는 법이 가려줄 일입니다. 다만 상인들이 내부 알력다툼을 하며 시장을 등한시하는 동안 한국 전통시장을 찾은 이들이 대형마트와 백화점으로 앞다투어 발길을 돌리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본 이시카와(石川)현에 있는 오미초(近江町·おうみちょう) 시장은 문화센터·도서관을 전통시장 안에 갖추고 순환버스를 마련하는 등 지역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정책으로 손님끌기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전통시장의 맏형인 남대문시장도 이제 집안싸움은 그만하고 오미초 시장의 사례를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없다면 서울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생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남대문시장은 영영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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