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 설 준비 알차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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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재래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 성수품을 준비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흥정도 있고 덤도 있어 정감이 넘친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시장 사람들을 만났다.

‘난주단’ 손난씨 “명절엔 한복 입었으면…”

서른 살 무렵부터 남산 중앙시장에서 ‘난주단’이라는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난(56)씨. 교직을 정리하고 시댁의 가업을 이어 받아 한복감을 고르고 디자인한 세월이 어느덧 25년이 됐다. “20년 전만 해도 명절 전에는 밤을 새가며 시어머니 일을 도와야 했다.” 경기 불황이라는 말을 모르고 장사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명절보다 봄·가을 혼수철 벌이가 오히려 낫다. 가격과 품질에 차별을 두고 운영해 온 덕에 찾는 손님이 꾸준하다. 한복집을 하며 아들 둘을 키워 냈다는 그는 “시대가 변하면서 옛 것의 소중함도 점차 퇴색되는 것 같다. 명절 때만이라도 자녀들에게 한복을 입혀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넉넉한 인심이 살아 있는 재래시장에서 설 명절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오랜 세월 재래시장을 지키며 살아 온 손씨에게 왠지 모를 푸근함이 느껴졌다.

잡곡가게 한옥희씨 “노점하며 키운 아들과 딸이 복덩이”

“간판도 출입문도 없는 가게지만 사방에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어 좋다.” 중앙시장에서 30년 세월을 보냈다는 잡곡 가게 한옥희(56)씨. 한씨는 같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과일 장사를 하다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잡곡 장사로 품목을 바꿨다. 대형마트가 늘면서 한때 중앙시장은 폐가나 다름없을 정도로 황량했다. 지금은 비 가림 아케이트, 공용주차장 설치 등 시설을 개·보수 해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잡곡 가격을 흥정하던 주부 김미자(52·청당동)씨는 “추워도 싸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시장을 찾게 된다”며 “대형마트보다 저렴하고 알도 토실해 좋다”고 콩을 한 움큼 집어 보여줬다. 2년 전 정년퇴직한 남편과 장사 호흡이 척척 잘 맞는다는 한 씨. 그는 “애들 키우면서 도시락을 못 싸줄 때는 속이 쓰리고 아팠다. 바르게 잘 자라준 3남 2녀의 아이들이 큰 복덩이”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부도 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싶다”는 새해 소망을 말했다.

‘드레스 미싱’ 김윤환씨 “일 많아 고단했던 그때 그 시절”

“가전제품이 나오기 전 재봉틀은 최고의 혼수품이었다” 재봉틀과 30년을 함께 한 ‘드레스 미싱’ 대표 김윤환(79)씨. 사직동 산꼭대기에서부터 장사를 시작한 그는 남산 중앙시장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옛날에는 남산 중앙시장이 도매시장이었어. 신신라사, 말표 고무신 도매상들이 줄줄이 있던 곳이지. 소매상이 생기고 노점이 생겨나면서 3일장과 9일장이 섰고 장이 서는 날이면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뤘지”라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판매뿐 아니라 수리까지 척척 해내던 그를 두고 사람들은 ‘미싱도사’라 부른다. 그는 “미싱으로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2남 3녀를 훌륭하게 키웠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손수 옷을 만들고 고쳐서 입히던 시절이라 손님들이 줄을 섰지. 일거리가 많아 매일 고단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참 좋았어.” 과거를 회상하는 김 씨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다.

분식점 주인 김낙순(59·사직동)씨 “재래시장 상품권이 효자”

20년 전 김낙순씨는 좌판을 놓고 이불 장사를 시작했다. 비가 오면 장사를 못해 우는 날도 많았다. 결국 김씨는 먹는장사가 남는다는 말에 이불 장사를 포기하고 길거리 분식집을 차렸다. 배고픈 시절이라 적은 돈 내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점은 수입이 괜찮았다. “16년을 하루같이 아침 7시부터 남편과 함께 재료준비를 하고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떡볶이·어묵·찰순대·튀김은 예나 지금이나 시장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기 메뉴다.” 그는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찾는 손님이 많아졌다. 특히 주말 장사가 잘 돼,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지금은 비 가림 시설 덕에 날씨와 상관없이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이 많아져 더욱 장사가 잘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31번 아줌마로 통한다는 그는 “재래시장 상품권이 발행 돼 몇 년 째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명절 때는 하루 매상의 절반 이상이 상품권으로 들어온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성일방앗간 이정득·윤원희 부부 “설 대목에는 밥 먹지 않아도 배불러요”

온양시장 수협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성일방앗간을 운영하는 이정득(62)·윤원희(56)씨 부부. 쌀장사를 하다 방앗간을 차린 지 20년 됐다. 방앗간은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가을 고춧가루를 빻느라 바빴을 기계들 건너편엔 잘 볶아진 참깨로 기름을 짜는 기계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기름 짜며 쌓이는 깻묵을 연신 삽으로 치워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부부. 지난 가능 수확한 참깨 한말을 가져와 기름 짜는 것을 지켜보는 김성금(여·67)씨는 이곳의 오랜 단골이다. 이번 설에 찾아올 아들과 딸에게 나눠 줄 참기름이라고 했다. 방앗간은 설 전 닷새 가량이 일 년 중 가장 바쁠 때다. 가래떡을 하러 방앗간을 찾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 이씨 부부는 설 대목에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말했다.

인정상회 심만례씨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 덕에 살아요”

인정상회 주인 심만례(78)씨. 47년 째 같은 자리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고 있다. 겉에서 보자면 건어물 가게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없는 게 없는 만물상회다. 47년 세월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었다. 10년 넘게 다니는 단골들이 대부분. 20년째 단골이라는 석덕분(여·71)씨와 제수용품 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흥정이지 제사상에 올라갈 물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며, 사과와 배도 크고 좋은 걸로 골라 주섬주섬 싸 주는 분위기가 마치 가족처럼 보인다. 계산을 마친 후에는 짐이 많으니 택시 타고 가라며 2000원을 다시 손님 손에 쥐어줬다. 4남매를 두신 심씨는 올해 설에는 손주들까지 모두 일을 하느라 바빠서 가게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하소연 하듯 던지는 말 속에는 자식들 모두 좋은 직장을 얻어 일하게 됐다며 은근한 자랑이 묻어 있다. “예전과 달리 대목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단골들 덕분에 꾸려 나간다”며 웃음을 지었다.

명동신발 윤범중씨 “북적거리던 옛 시장 그리워”

명동신발 윤범중(66)씨는 온양 토박이다. 온양 6동에 살면서 20년째 신발가게를 운영해 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앉아 윤씨와 함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윤씨는 “온천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 식당과 먹을 거리 장사는 잘 되는 것 같은데, 신발을 사러 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뜸하다”고 말했다. 명절 날 설빔을 하는 것은 모두 옛말이고 요즘엔 명절이라고 특별하게 신발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없어 오히려 한가하다고 했다. 최근 가장 많이 나가던 신발은 어르신들의 방한 신발인데 그마저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겨울 상품을 구입하는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남 1녀를 둔 윤씨는 올해 2월에 막내 아들을 장가 보내는데 “마음은 바쁘지 않고 돈만 바쁘다” 며 “큰 잔치를 벌이듯 북적거리던 옛날 시장이 그립다”고 말했다.

이경민·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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