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영훈국제중 첫 졸업생들이 말하는 학교생활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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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에 입학한지 3년, 이제 국제무대가 두렵지 않습니다.” 서울지역 국제중 첫 졸업생인 송주경(대원국제중 3, 대원외고 합격·사진 오른쪽)양과 김병수(영훈국제중 3, 하나고 합격·사진 왼쪽)군은 “지난 3년은 국제 감각을 익히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적 사건 조사·발표하며 사고력 키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에 대해 그들은 각각 ‘국제이해’와 ‘국제관계’ 수업을 꼽았다. 송양은 국제이해 수업에서 진행한 활동 중 하나인 모의유엔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기’가 주제였는데, 중국 대표를 맡았어요.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때마다 돈을 얼마 더 내야 하는지를 갖고 갑론을박을 펼쳤죠.” 송양은 유럽 대표를 맡은 친구들을 설득해 ‘미국이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 국가이니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을 형성했다. “마치 중국대표로 유엔에서 활동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이 됐어요.”

 김군은 국제적 쟁점과 관련된 발표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사가 ‘일본지진’이라는 대주제를 정해주면 학생 스스로 ‘일본지진이 국제 정세에 미치는 영향’과 ‘일본지진을 도우려는 국제기구’와 같은 세부 주제를 정한 뒤 관련 내용을 조사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수업이다. “국제적 사건과 관련된 고급 정보는 일반적인 포털사이트 검색엔진으로는 찾기가 어려워요. 유엔과 관련된 국제기구 사이트와 신문기사를 꼼꼼히 조사해야 합니다.” 며칠이 걸리는 자료 수집은 발표 준비의 시작에 불과했다. 파워포인트를 어떻게 만들지, 발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1주일 정도는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준비해야 만족스러운 발표를 할 수 있어요. 발표 전날에는 밤을 새야 했죠. 하지만 이런 수업이 여러 번 진행되니 국제이슈 5~6개에 대해서는 영어로 막힘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평생 재산 될 자기주도학습능력 계발 경험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국제중에서 터득한 성과물이다. 김군은 입학하자마자 다니고 있던 영어·수학학원을 그만뒀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 외에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방과후 수업 덕분이다. 수준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방과후 수업은 ‘맞춤형 학습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실제 국제중은 내신이 부족한 학생을 위한 학교내신대비반, 우수한 성적대의 학생을 위한 영어 토론반이나 수학올림피아드 준비반, 토플·텝스와 같은 영어인증시험 대비반 등 다양한 강좌를 운영한다. 본인의 진로와 성향, 수준에 맞는 수업을 골라 들으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 특기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3학년이 되자 학교는 비교내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외국어고·과학고·자율고 준비반이 개설된 것은 물론, 1단계 전형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준비를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강좌 덕에 학원의 도움 없이도 내신과 입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제중에서 익힌 자기주도학습능력은 고교진학 후에도 큰재산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을 돕는데 열정적이었다. 김군은 수학교사의 제안으로 중2 겨울방학부터 4개월 동안 방과후 수업을 활용해 ‘수학의 달인’이라는 수학교재를 만들었다. 뜻이 맞는 2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고1수준의 수학교과 개념을 정리를 한 뒤 대수·도형·함수 부분으로 나눠 문제를 개발하고, 개념활용 방법을 제시하는 등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교재를 제작했다. 그 결과 김군은 수학공부에 대한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 “수동적으로 문제만 풀다가 직접 문제를 만드는 입장이 되니 ‘내가 교사라면 방정식과 집합을 섞어놓은 복합적인 문제를 내겠다’는 식으로 시험에서 어떤 유형의 문제가 출제될지 감(感)이 잡혔어요.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또 다른 시각을 갖추게 됐죠.”

 송양은 교사들의 세심한 배려와 학생 개개인에 대한 애정을 자랑했다. 내신 때문에 일반고와 특목고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에게 담임교사는 “일반고에 가서는 너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일침을 가했다. 송양에게 대원외고를 추천한 것도 담임교사였다. 송양은“선생님이 나도 모르고 지나쳤던 학습성향의 장단점을 꿰뚫고 있어 놀랐다”며 “선생님의 충고를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웃었다.
 
우수학생과의 경쟁으로 나의 장단점을 발견해

 하지만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우고 국제중에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1학년 때는 진지하게 전학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어몰입교육과 밤을 새우며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은 13살 어린 학생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짐이었기 때문이다.

 인내는 썼다. 그러나 열매는 달았다. 우수한 학생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계발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공부를 잘 한다’는 소리를 곧잘 듣던 우수한 학생들만 모이는 곳이 국제중이잖아요. 저도 초등학생 땐 수학·과학경시대회 나가면 줄곧 대상·금상을 받았거든요. 수학·과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송양이 국제중 입학 후 처음 치른 내신시험에서 ‘세자리 등수’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받았다. “국제중 1기 입학생들은 영재교육원 출신이 많았어요. 수학·과학에서는 고교 수준 이상의 학습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는 1학년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우수한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해 나갔다. 발표와 토론 분야가 그것. “수학·과학교과는 저보다 잘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발표와 토론에서는 제가 우위에 있었어요. 이후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실력을 키운 결과 학교에서는 저를 ‘토론의 제왕’, ‘프레젠테이션의 전설’이라고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실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국제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수학·과학 공부에만 매달려 다른 재능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조차 안했겠죠.”

 김군도 수준별 반편성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뒤 영어·수학으로 나눠지는 수준별 반에서 하위권 학급에 속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이후 부족하다고 느꼈던 수학과목에 다른 과목의 3배이상의 시간을 집중 투자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수행평가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도록 준비했다. 결국 2학년 2학기 때부터는 상위권 반에서 수업을 들었고, 3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는 수학성적을 전교 10등까지 올렸다. 김군은 “국제중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냉철한 눈을 기를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두 우수한 학생뿐입니다. 그들을 뛰어 넘으려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현재 나의 위치를 냉정히 인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훗날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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