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보다 이탈리아가 더 충격 … 주가보다 국채값을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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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유로존 9개국 강등은 격한 반응을 낳았다. 최고 등급인 트리플A(AAA) 등급에서 밀려난 프랑스가 가장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 당국자들만이 불만을 터뜨린 게 아니었다. 정당도 나섰다. 사진은 S&P 파리 사무소로 몰려들어 A자가 적힌 피켓 3개를 들고 신용등급 강등에 항의하는 급진 좌파 정당원들의 모습. [파리 로이터=뉴시스]

데이비드 비어스(59·사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국가신용평가 책임자는 지난해 12월 6일 경고했다. 유로존 회원국 15개 나라를 ‘부정적 관찰대상(CreditWatch Negative)’에 올려놓았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을 경고(4월)한 대로 강등했다. ‘워크더토크(Walk-the-talk, 언행일치)’가 그의 별명이 됐다. 글로벌 시장은 예측게임을 시작했다. 비어스 판도라가 열릴 시점을 예측하는 게임이었다. 절대다수가 2012년 1월 말을 예상했다. 비어스는 한걸음 먼저 움직였다. 13일 유로존 9개 나라 등급을 낮췄다. 경고한 지 꼭 37일 만이었다. 그는 S&P 내에서 매파다. “아무나 최고 신용등급(AAA)을 받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엔 평가기준 강화에 앞장섰다. 강화된 기준에 따라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이 강등됐다. 물꼬가 터진 셈이다. 프랑스 강등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이제 관심은 파장이다. 독일과 프랑스 쪽은 애써 무시하는 듯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번 조치는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며 평가절하했다. 프랑수아 바루앙 프랑스 재무장관은 “S&P가 프랑스 신용등급을 미국과 똑같이 낮췄다”며 “이는 나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재앙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3일 미국·유럽 주식시장은 S&P 강등 발표 전에 마감됐다. S&P가 프랑스 등의 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소문은 미리 나돌았다. 양쪽 시장 주가는 그 소문에 내리기는 했다. 그러나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로이터 통신은 유럽 채권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S&P 강등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인 셈”이라고 전했다.

 첫 시험대는 한국시간 오늘(16일) 저녁에 실시될 프랑스 국채 입찰이다. 프랑스는 87억 유로(약 13조5000억원)를 조달할 예정이다. 트리플A(AAA) 등급에서 밀려난 파장이 금리라는 숫자로 확인될 듯하다. 미 CBS 마켓워치는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그리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금리 부담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등급 강등이 금리 부담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는 많다. 미국·일본은 등급을 깎였지만 국채 값은 고공행진했다. 위기 와중에 믿을 만한 자산이 줄어든 탓이다. “프랑스 국채가 S&P 강등만으로 시장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불똥은 곧잘 다른 곳으로 튄다. 이번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는 독일에 이어 기금의 2위 보증국이다. “1580억 유로(약 245조원)를 대신 갚아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프랑스가 최고 등급에서 밀려났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EFSF 채권 수요가 예전 같지 않다. 미 경제전문채널인 CNBC는 “프랑스의 강등이 EFSF 금리 부담을 늘려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채권시장의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EFSF는 이번 주 후반에 채권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그는 EFSF와 올해 출범할 항구적인 구제금융펀드인 유럽재정메커니즘(ESM)의 자본 규모를 더 늘릴 가능성을 언급했다.

 S&P 강등으로 큰 타격을 받을 나라로 이탈리아·스페인이 꼽힌다. 두 나라는 아직 구제 대상은 아니다. 경계선상에 있는 나라다. 요즘 채권 값이 조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수준이다. 이탈리아의 10년물 채권 수익률(시장금리)은 연 6%대고 스페인은 연 5%대다.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언제든지 치솟을 수 있다.

 미 채권전문가인 캐서린 브룩스는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는 투자등급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셈”이라며 “피치도 신용등급을 조정할 이달 말 이탈리아의 장기채 발행에서 S&P 강등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비어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내 서열 3위인 국가신용평가 책임자다. 각국 재무장관들 사이에선 S&P 핵심 인물로 통한다. 그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줄담배꾼이다. 미국 버니지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으나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가 투자은행에서 각국 국채 평가와 분석을 담당하다 1990년대 초 S&P에 영입됐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밀어붙인 S&P의 전 사장 데번 샤르마의 최고 심복으로 꼽힌다. 샤르마가 물러난 뒤에도 S&P의 평가가 강성을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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