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親舊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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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뜻하는 한자는 한·중·일이 모두 다르다. 한국은 친구(親舊), 중국은 펑여우(朋友), 일본은 도모다치(友達)다. 사귐에 대한 심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산과 물로 오랫동안 초대 받았으니, 내가 어찌 주저할 것인가. 다만 친한 옛 벗들 때문에 살 곳 찾아 가겠다고 차마 말을 못했다(山澤久見招, 胡事乃躊躇, 直爲親舊故, 未忍言索居).” 친구의 용례는 도연명(陶淵明)의 ‘유시상에게 화답하다(和劉柴桑)’란 시에 처음 보인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을 따라 우리 선조들은 시문(詩文)을 지을 때 벗을 붕우로 표현했지만 친구도 많이 사용했다.

벗 우(友)는 좌(左)·우(右)에서 손을 뜻하는 부분(ナ)과 손(又, 우)이 합쳐진 회의(會意) 자다. 손과 손이 한 방향을 향하는 모습이다. 서로 손 잡고 돕는다는 의미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벗 붕(朋)을 봉황(鳳)의 상형(象形) 자로 풀이했다. 봉황이 날 듯 새 떼가 무리 지어 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 어울려 만든 당파를 붕당(朋黨)이라 한다. 주역(周易)에 “군자는 붕우와 함께 (도의를) 강습한다(君子以朋友講習)”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동문(同門)이 붕이요, 동지(同志)는 우”라고 풀이했다. 스승이 같으면 붕, 뜻이 같으면 우인 셈이다.

친구는 종류도 다양하다. 잘못을 솔직히 충고해 주는 친구는 쟁우(諍友), 도움이 되는 친구가 익우(益友), 나이에 거리낌 없이 허물없이 사귀면 망년교(忘年交)다.
최근 왕따(집단 따돌림)를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왕따는 일본의 ‘이지메(虐め)’가 한국화된 현상이다. 고전에 왕따를 뜻하는 자구(字句)는 없었다. 같은 스승을 모시는 벗(朋)끼리 같은 꿈을 키우며 우정(友情)을 나누느라 자기의 힘을 믿고 약한 이를 못살게 구는 시강능약(恃强凌弱)에 한눈팔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주자(朱子)가 ‘권학문(勸學文)’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一寸光陰不可輕)”고 했듯이 말이다. 겨울방학을 보내는 자녀와 함께 논어(論語) 같은 고전을 읽으며 평생의 재산이 될 벗 사귐을 이야기하자. 왕따 문제의 해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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