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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없는 공장에 일자리 쏟아진다 서비스업 고용효과 제조업의 2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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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22면

12일 오전 서울 논현동 플립커뮤니케이션즈 회의실. 이병하 대표(왼쪽에서 여섯째)와 팀장들이 열띤 회의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기업 규모에 비해 채용을 많이 늘려 지난해 서울시의 일자리 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최정동 기자

서울 논현동의 플립커뮤니케이션즈라는 벤처업체는 1년 새 직원 수가 급증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앱) 등을 개발·공급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초 직원 수가 94명이던 것이 이달 138명으로 50% 가까이 늘었다. 1998년 설립 후 웹사이트 구축을 주로 하다가 2~3년 전부터 활황인 스마트폰·태블릿PC 쪽 프로그램 개발에 비중을 키운 덕분이다. 대부분 20~30대가 일하는 사무실에 가 보면 젊음의 열기가 후끈 느껴진다. 이병하(41) 대표는 “모두 정규직이고 급여도 동종업계에선 괜찮은 편인데 모바일 쪽 전문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년 기획-다시 일자리 (하) 서비스·지식 산업에 날개 달자

‘굴뚝 없는 공장’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는 시대다. 플립커뮤니케이션즈는 디자인에서 프로그램 개발까지 숙달된 인력의 손이 많이 필요해 사업이 크는 만큼 고용이 쑥쑥 늘어난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업체 SK커뮤니케이션즈는 한 해 매출 2420억원에 고용인원이 무려 1400여 명에 달한다. 직원 평균 연령도 30대 전반이다. 게임업체인 네오위즈게임즈는 3년간 일자리를 연평균 30%씩 늘려 정부의 고용창출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3D(3차원)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디지아트 프로덕션은 국내외 주문이 늘면서 지난해 직원을 30% 늘렸다. 현재 100여 명으로 올해 20~30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제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을 심화시키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비스·지식산업을 일으키자는 것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서비스업은 고용창출 효과(고용유발계수)가 제조업의 2배에 달한다. 서비스업은 10여 년간 일자리를 늘리며 고용 감소세나 정체를 보여온 제조업 부문의 인력을 흡수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서비스 산업의 고용 비중은 미국·영국과 같은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고려대 강성진(경제학) 교수는 “의료·교육·레저 등 국내 각종 서비스 산업의 수준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해 해외로 나가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면 내수를 일으켜 일자리 증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 기기의 확산과 정보기술(IT) 융·복합, 소프트웨어(SW) 수요의 증가, 관광·레저 분야의 성장 등도 새로운 콘텐트와 인프라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지식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와 불합리한 여건은 사회 곳곳에 끈질기게 도사리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호텔은 외국인 관광객의 저렴한 객실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증축하거나 인접한 부지에 새 건물을 지을 생각이지만 녹지 내에 있는 탓에 용적률(50%) 제한을 받아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 고위 인사는 “여행·관광업은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산업이지만 각종 규제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연경관이나 문화유산 중심의 관광자원 개발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한류체험·쇼핑·미용성형 등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2007년 645만 명에서 2010년 880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은 2007년 107만 명에서 188만 명으로 급증세다.

지식산업과 노동집약 산업 성격을 두루 지닌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선 인력 수요가 늘고 있지만 불법복제의 온상과 고된 ‘3D’ 업종이란 인식으로 사람 구하기 힘들다. 의료계측기기용 SW를 개발하는 임픽스는 인력 수요가 10명이면 15명쯤 뽑아 놓는다. 이상호 대표는 “급여는 괜찮은 편인데 야근과 주말 특근을 밥 먹듯 해 불시에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년 대비 2배가량인 3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직원 수도 40%가량 늘어난 35명에 이르지만 늘 인력 충원을 고민한다.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SW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관행, 또 SW를 불법 복제해 쓰는 악습만 줄여도 관련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김은현 상근부회장은 “우리나라 SW 불법복제율을 40% 정도로 본다. 이것이 10%포인트만 떨어져도 일자리가 1만 개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SW 산업이 활성화하면 개발인력 일자리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통인력 등 전후방 고용증대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지난달 낸 ‘5대 서비스 산업 발전 전략’이란 보고서에서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 창출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고용창출 효과가 큰 5대 서비스 산업으로 ▶의료 ▶문화콘텐트 ▶관광·레저 ▶사회복지서비스 ▶법률·회계·컨설팅을 꼽았다. 특히 의료서비스산업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선임연구위원은 “의료기술 면에서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만큼 적절한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국제의료서비스 시장 규모는 2008년 600억 달러에서 올해 1000억 달러(115조원, 추정치)로 빠르게 늘어나는데 국내에선 규제 과잉으로 제대로 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싱가포르 등은 의료법인이 증시 상장을 통해 큰 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설·장비를 현대화해 국제의료관광 허브로 크고 있다. 대한상의의 이경상 경제정책팀장은 “선진 시장경제국 가운데 영리의료법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10년째 논란 중인 우리나라와 일본·네덜란드 정도”라며 “영리법인과 함께 의료기관의 원격진료나 휴양시설 서비스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해외 부유층 등 의료관광객 유치로 국내 관련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기개발연구원의 이상훈 연구위원은 “법률·회계·세무와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의 국내 진입 장벽을 완화하면 관련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서비스 산업 하면 으레 로펌·병원·교육기관 등 전문가 영역을 연상하지만 우리 생활과 밀접한 의식주 관련 서비스업의 효율화 역시 시급한 과제다. 국내 서비스 산업에서 도소매·음식숙박·운수 같은 저부가가치 분야의 종사자는 전체 서비스업 종사자의 60%가 넘는다. 일례로 1993년 신세계가 서울 창동에 대형마트인 이마트 1호점을 냈을 때 매장 근무인원을 포함한 회사 직원은 100여 명이었다. 18년이 지난 지난해 말 이마트 직원은 본사·매장 포함해 1만3400여 명에 달했다. 1만㎡ 면적의 대형마트 하나를 열면 500여 명의 신규 고용 효과가 있다. 대형마트 출현으로 인한 재래시장·골목 상권의 붕괴 논란은 커다란 숙제지만 전통 서비스업의 업그레이드는 고용창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윤희숙 연구위원은 “금융·법률 등 전문가형 서비스와 유통·음식업 등 저부가가치 서비스 정책은 달리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급 서비스는 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력과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도소매 쪽은 근무여건 개선과 같은 근로자 복지 향상, 서비스 품질 향상에 치중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확충과 관련해 서비스업에 눈을 뜨되 우리나라 고도 성장에 효자 노릇을 한 제조업을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일단 제조 대기업 중에 대규모 고용 효과를 내는 곳이 많다. 99년 직원 2960명으로 출발한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말 직원수가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설비 확장에 따른 생산 인력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등 고임 일자리가 많이 늘었다. 설비 자동화 등으로 제조업의 전반적인 고용 창출능력은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서비스 산업과 연계하거나, IT를 접목함으로써 간접적인 고용창출 효과를 내는 곳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손민중 수석연구원은 “전통 제조업에는 수입이 괜찮은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고, 특히 고용유발 효과가 큰 부품·식음료·섬유패션 등의 업종은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54명을 신규 채용해 고용노동부의 고용창출 우수 중견기업으로 선정된 락앤락은 2조2교대를 3조2교대로 바꾸는 방식 등으로 일자리를 늘렸다. 직원별로 매달 8시간씩 능력개발 교육을 받아 생산성도 높였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수석연구위원은 “제조업 일변도 산업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제조업을 등한시하는 건 더 큰 문제다. 제조·서비스업을 양 날개로 일자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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