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사달라, 쌀 사달라 … ‘선거의 해’면 흔들리는 농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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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석 달 앞두고 농민의 집단행동이 잇따르고 있다. 5일과 11일 축산·쌀 농가 시위에 이어 16일에는 젖소 농가가 소값 하락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5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집회에 끌려온 소의 머리에 ‘가자! 청와대로! 한우 30만두 즉각 수매하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중앙포토]

총선을 석 달 앞두고 농민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5일과 11일 축산·쌀 농가 시위에 이어 16일에는 소값 하락 대책을 요구하는 젖소 농가의 시위가 예정돼 있다. 시위 현장에선 “총선에서 표로 심판하겠다”는 성명이 나왔다. 명지대 신율(정치학) 교수에 따르면 245개 국회의원 지역구 중 농업 문제와 관련된 지역구는 100곳 이상이다. 농촌을 낀 지방자치단체도 바빠졌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10일 “농민 단체와 협력해 획기적 농업정책을 개발해 대선과 총선 공약으로 밀어넣으라”고 충남도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농촌 인구와 농촌 출신 국회의원이 줄어 농업정책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여론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2일 농정 이슈 보고서에서 “올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양대 선거로 인해 어느 때보다 농정 이슈가 많아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미 올해 예산 처리에서 국회의 농촌 표 의식은 표면화됐다. 국회는 지난 연말 한·미 FTA 피해 보전 예산 규모를 정부안보다 3042억원 늘린 2조1578억원으로 늘렸다. 밭 농업과 수산업에 대한 직불제 예산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총 642억원 규모다. 직불제는 농산물 가격이 내리면 세금으로 농민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다. 농협 지원 예산도 4조원에서 5조원으로 증액됐다.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농협 조직 개편을 5년 늦추겠다고 국회가 으름장을 놓은 결과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농민 표를 의식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한·칠레 FTA 비준안 때문에 진통을 겪었다.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농촌에 지역구를 둔 ‘농촌당’ 의원이 처리를 막았기 때문이다. 농민단체가 동의안에 찬성하면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었다. 비준안은 네 번의 시도 끝에 가결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농민이 농협에서 빌린 돈의 이자 일부를 정부가 대신 갚는 부채 탕감안을 내놓아야만 했다. 이미 농가 피해 예상액의 세 배에 이르는 1조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상태에서다.

 총선 공약은 두고두고 문제를 남긴다. 최근 송아지 가격 파동 때의 정책 엇박자가 대표적이다. 국회는 농촌 의원 주도로 2000년 총선 후 송아지 가격이 일정액 이하로 하락하면 보조금을 주도록 축산법을 개정했다. 이 바람에 송아지를 줄여야 했던 지난해에도 사육 장려금 성격의 돈이 63억원이나 지급됐다. 서강대 조장옥(경제학) 교수는 “농가 소득 지원과 농업 경쟁력 향상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각 당이 선제적으로 정책 대안을 만들어 총선 공약이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시위를 주도하고는 있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내부 진통으로 농촌사회를 이끌 동력을 끌어내는 데 과거만 못하다는 게 농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전농은 지도부 후보 등록 시한을 두 번이나 연기하고도 내부 이견으로 올해 의장 등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한국농업경영인총연합회나 품목별 협의체가 최근 FTA 관련 지원책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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