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장 비고, 아나키스트의 로맨틱한 시정

중앙일보

입력

아이들의 무정부주의적인 모반을 다룬, 영화사상 가장 시적인 판타지라고 할 장 비고(1905-1934)
의〈품행 제로〉는 당시 폭동을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프랑스 검열당국으로부터 금지 당했다. 이 영화가 재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1946년에 이르러서 였다.

장 비고의 영화는 당대에는 상업적인 환대도, 비평가의 관심도 끈 바 없지만, 후대에는 무수한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신화를 증명하는 알리바이로 남겨졌다.〈품행 제로〉만 해도 프랑수아 트뤼포의〈400번의 구타〉와 린제이 앤더슨의〈이프〉(If...)
에 큰 영향을 준 영화였다. 물론 그의 영향을 받은 이의 목록은 여기서 더 추가될 수 있다. 29년이란 짧은 생에 점착되어 있던 비고의 병약함과 궁핍함과 불운함은 대신 생명 긴 아나키스트적 시성(poeticity)
을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미구엘 알메레이다(Miguel Almereyda)
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의 아들이었던 비고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기숙사 학교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과 공모하여 프랑스 정부를 모반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는 감옥에서 교살된 채 발견되었다. 그때 비고는 겨우 12살이었는데 아버지의 더럽혀진 이름과 의문스런 죽음을 해명하기 위해 캠페인에 참여했다.

유년시절 그가 겪은 우울한 경험은 소심하고 위선적이며 부조리하게 권위적인 선생들에게 대항하는 아이들에 대한 시적, 초현실적, 반(反)
부르주아적 우화〈품행 제로〉(33)
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체험을 통해 길러진 무정부주의자의 도발적인 시선은 그의 전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조증에 걸린 태양 숭배자들에 대한 공격적인 다큐멘터리〈니스에 대하여〉(29)
는 니스의 카지노에서 어슬렁거리는 부르주아 관광객들의 게으름과 뒷골목 슬럼가에 사는 노동계급 하층민들의 공동체 정신을 정묘하게 병치시킨다. 하층민의 편에 서서 기존체제를 비판하는 비고의 인민주의적 감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 지가 베르토프의 영향권 안에 놓여 있다.

이 영화는 베르토프의 동생인 보리스 카우프만이 촬영을 담당했는데, 보리스와 비고는 키노 프라우다(Kino-Pravda)
식으로 촬영했다. 비고는 보리스를 휠체어에 태워 거리를 돌아다녔고 보리스는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보이지 않게 위장한 채 몰래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한편 이 영화의 초반부에는 '대도시 교향악' 식의 기법이 사용되기도 했다. 체스판 위에 야회복을 입고 있는 인형들이 서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인형들을 치워버리자 그 동작은 쓰레기를 치우는 거리 청소부의 움직임과 겹쳐진다.〈니스에 대하여〉가 상영되자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고 비고를 '3류감독'이라 불렀다. 영화는 '도시 교향악'들과 닮아 있었지만 지극히 역겨웠던 것이다.

비고의 화술은 투명하고 시적이고 초현실적이다. 탁하고 사소해 보이는 리얼리티는 수면 위로 흐르는 투명한 시로 옮겨졌고, 수면 위,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경계영역에서 그는 자유롭게 유영했다.

비고의 사적 배경이 무정부주의였다면 미학적 배경은 초현실주의 운동이었다. 비고는 루이스 브뉘엘의〈앙달루시아 개〉(28)
를 찬미하는 리뷰를 쓴 바 있다.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 기법 모두를 차용해 이야기를 풀어 가는, 병치와 대조와 혼합의 스타일은 일상의 디테일들을 신화적인 순간으로 이끈다.

〈니스에 대하여〉에서는 풍자적인 과장법과 성적 이미지를,〈수영 챔피언 따리〉(31)
는 다소 완화된 초현실주의를 담고 있으며,〈품행 제로〉에서는 형식주의적 캐리커쳐와 극사실적 묘사를,〈라딸랑뜨〉(34)
에서는 자연주의와 초현실적 로맨티시즘을 충돌시키고 배합한다. 그의 영화 미학은 몽환의 시학으로 재창조된 리얼리즘이었다.

〈품행 제로〉와 함께 비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라딸랑뜨〉는 두 연인의 결혼, 이별, 재결합이라는 낡은 이야기 흐름을 따르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진부한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이미지들의 에로틱한 랩소디이기도 하다. 일상의 리얼리티는 감각적이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세심하게 다루어진다. 게다?뉜捉蕙傘돛?그 초현실주의적인 세계는 기존 사회의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무정부주의적인 열정이 아름답게 발산한다.

단순히 이야기해, 장 비고의 영화는 고전적이고 폭력적이고 반항적이면서 늘 고통에 차 있고 열에 들떠 있으며 아이디어와 판타지로 넘쳐흐른다. 그것은 악의로 가득차 있고 심지어 악마적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특성이 남아 있는 아나키스트의 로맨티시즘이다.

초현실적인 몽환과 양식화된 리얼리티를 기묘하게 병치함으로써 비고는 시적 리얼리즘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피스와 오슨 웰스가 그렇듯, 비고의 재능은 과거의 사조를 통합하여 미래의 스타일로 재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비고는 무성시대 프랑스 아방가르드의 형식주의적 표현성,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 찰리 채플린의 열려 있는 자연주의, 그리고 지가 베르토프의 진실을 향한 직접성을 혼합하여 양식화된 리얼리즘의 영화로 재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것은 르네 클레르, 장 콕토, 마르셀 카르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루이 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린제이 앤더슨, 레오 카락스에 의해 계승되고 수정되었다.

장 비고 연보

1905년 4월 26일 장 보나벤뛰르 드 비고,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926년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가짐.
1928년 클로드 오탕-라라, 제르멘느 뒬락과 만남. 촬영 감독 레옹
스 앙리 뷔렐의 조수로 영화 작업 시작.
1929년〈니스에 대하여 A propos de Nice〉감독
1931년〈수영 챔피언 따리 Taris Champion de Natation〉(11분)

1933년〈품행 제로 Zero de Conduite〉감독
1934년〈라딸랑뜨 L'Atalante〉감독
1934년 10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

Joins 엔터테인먼트 섹션 참조 (http://enzone.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