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만기 12월에만 10조원 몰려

중앙일보

입력

현대사태가 잠잠해지면서 자금시장이 표면상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지만 사실은 올 연말을 걱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2월에 무려 10조6천46억원의 회사채가 만기를 맞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은 특히 내년 1월부터 예금부분보장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되는 것과 맞물리면서 자금경색이 빚어져 중견기업들이 또다시 부도위기에 몰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1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물량 20조4천8백82억원 중 절반을 넘는 10조6천46억원이 12월 한달에 몰려 있다.

꼭 3년 전인 1997년 12월 외환위기를 맞아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이 무더기로 발행했던 회사채가 3년 만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정책조정심의관은 "회사채 부분보증 재원을 늘려 현재 10조원으로 계획한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발행량을 10조원 이상 더 늘릴 예정" 이라고 밝혔다.

그는 "20조원의 회사채 만기물량 중 절반 정도인 10조원은 5대그룹 것으로 자체 해결이 가
능하다" 며 "나머지 절반은 프라이머리 CBO로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진병화 재경부 국고국장은 "정부는 세계(歲計)잉여금으로 이미 발행한 국고채를 되사들이는 방안도 마련 중" 이라며 "금융기관들이 국고채를 판 자금을 회사채 매입에 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금융기관의 신용대출이나 매입채권이 부실해지더라도 관련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정부 대책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은 일단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동원 키움닷컴증권 이사는 "언제까지 정부가 직접 나서 한계기업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 이라며 "기업들이 자체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훨씬 높게 지불하더라도 자금을 끌어쓸 수 있는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그는 "공금리가 제로인 일본에도 20% 이상의 금리가 적용되는 정크본드(투기등급채권)시장이 있다" 고 말했다.

윤종은 교보투신운용 채권운용팀장은 "우리나라에 정크본드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되고 신용평가기관들의 평가능력도 달려 살 기업과 죽을 기업을 가려내기 힘들기 때문" 이라며 "정부는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투명한 원칙 아래 구조조정을 서둘러 마쳐야 한다" 고 강조했다.

성철현 LG투자증권 채권팀장은 "정부가 나서면 한계기업들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시장의 평가를 받아 살아나려고 하기보다는 정부에 자꾸 의존하려 들게 마련"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나마 올 연말 회사채 만기는 5대그룹 비중이 커 그런 대로 넘길 수 있을 것" 이라며 "그러나 내년 하반기부터 다시 급증하는 만기물량은 대부분 한계기업들의 것이라는 점에서 미봉책으로는 더 이상 막기 힘들 것" 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