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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나 법관 재임용 심사 … 24년 동안 탈락자 3명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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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다음 달 실시되는 법관 재임용 심사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요식 절차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법관 평가 기준 강화를 명문화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5개월이 지났지만 대법원이 관련 규칙 마련에 늑장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8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구체적인 판사 평정 기준 마련을 대법원장에 촉구하기로 하고, 법 개정에 나섰다.

이에 따라 개정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무성적과 자질을 평정하기 위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 평정 기준은 ▶사건 처리율과 처리 기간 ▶상소율과 파기율 및 파기사유 ▶성실성과 청렴성, 친절성 등을 포함해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당시 대법원도 자체적으로 마련한 사법개혁안에서 ‘판사근무성적평정규칙’ 개정을 통해 연임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현재까지 해당 대법원 규칙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지난해는 시간이 촉박해 하지 못했다”며 “올해 안에 규칙을 개정해 내년 심사부터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월 예정된 법관 재임용 심사는 기존처럼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행 규칙에는 구체적인 평가 항목이 제시돼 있지 않다. ‘신뢰성과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평정한다’는 추상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다. 더욱이 근무성적 평정자료는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개별 판사의 직무능력을 외부에서 확인·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1988년 재임용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연임 심사에서 탈락한 판사는 3명에 그치고 있다. 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막말을 하거나 재판을 대충 하는 판사 등은 엄격한 연임 심사를 통해 걸러내야 한다”며 “재판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재판의 질 저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재임용 심사 강화의 필요성은 지난해 말 일부 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막말’ 논란을 빚으면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올해 법관 재임용 대상은 법무관 근무를 하지 않은 사법연수원 29기 등이다. 최근 ‘가카의 빅엿’ 등 SNS에서의 대통령 비하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북부지법 서기호(43) 판사도 심사 대상이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 판사가 선출직이어서 시민단체 등의 엄격한 검증을 받고 있으며 재임용 심사도 엄격하다. 2005년 한국인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600억원 바지 소송’을 냈던 로이 피어슨 워싱턴 행정법원 판사는 2007년 시(市) 재임용심사위원회에서 탈락했다.

대한변협 장진영 대변인은 “판사라고 하더라도 업무상 명백한 잘못이 있다면 근무평정과 재임용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법관 재임용 심사 기준 강화 법 개정에도 대법원 평가 규칙은 그대로

▶ 법원조직법 (2011년 7월 개정)

제44조의 2(근무성적 등의 평정)

①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무성적과 자질을 평정하기 위하여 공정한 평정 기준을 마련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평정 기준에는 근무성적평정인 경우에는 사건 처리율과 처리기간, 상소율, 파기율 및 파기 사유 등이, 자질평정인 경우에는 성실성, 청렴성 및 친절성 등이 각각 포함되어야 한다.

④ 그 밖에 근무성적과 자질의 평정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다.

▶판사근무성적평정규칙(2009년 7월 개정)

제5조(평정 방법)

① 근무성적평정자는 신뢰성과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평정하여야 한다.

④ 직무수행능력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직무실적, 추상적·잠재적 직무능력 및 자질을 종합하여 평정자가 재량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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