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삶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위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2호 02면

기자가 추기경에게 물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힘들어 합니다. 취업난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진석(사진) 추기경은 눈을 감고 한참을 있었다. 그러더니 옛날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였다. 중앙일보 7일자 j섹션에 실린 정 추기경 인터뷰 기사 내용이다.

우리는 몰랐다. 정 추기경의 부친이 사회주의자였고, 월북(越北)했다는 사실을. 그는 또 6·25 때 폭탄이 터져 기절했다 깨어나보니 사촌동생이 옆에서 배가 터진 채 숨져 있었다고 했다. 한겨울 얼어붙은 남한강을 건너 피란 가는데 바로 뒤쪽의 얼음이 깨져 사람들이 물에 빠져 숨지는 걸 보면서도 도망쳤고, 경북 의성에선 앞서 가던 사람들이 지뢰를 밟아 여러 명 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는 얘기도 담담하게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이미 죽었으니 이제부턴 남을 위해 살라는 (신의) 메시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네가 신부가 되면 홀어머니는 누가 모시냐”며 주교가 반대하자 오히려 홀어머니에게 부탁해 주교를 설득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당시 ‘청년 정진석’이 느꼈을 고뇌의 무게가 느껴져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제의 길을 걸어간 그는 아마도 평생 마음에 짐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믿는 신과, 종교는 아편이라고 외치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한 아버지, 그러니까 정신의 아버지와 육체의 아버지 사이에서 말이다. 그 모든 개인의 아픔과 갈등, 마음의 고통을 묵묵히 안은 채 정 추기경은 한평생 봉사하고 희생하는 참 종교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다면 추기경이 60여 년 전에 있었던 고통스러웠던 젊은 시절을 어렵사리 들려준 이유는 뭘까. 그것은 힘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을 찾기 어렵고, 그런 대학을 들어가려고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내몰리고, 친구들의 따돌림에 괴로워하는 요즘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추기경은 말했다. “힘을 내세요. 힘든 일을 이겨내면 힘이 생깁니다.” 그것은 고통과 고뇌의 바닥에서 종교를 통해 힘을 얻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진심 어린 충고일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선 어른이 사라져 버렸다. 어른들의 지혜도 묻혀 버렸다. 빠르고 새롭고 첨단인 것들이 진지하고 성찰적이고 오래된 것들을 비웃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좌절과 방황은 늘어가고 있다. 우리 젊은 세대가 개인적 고통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한 추기경의 팔순 삶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의 선익(善益)을 위해 살아달라”는 그의 당부를 되새기면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