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무상보육보다 가정양육 지원이 먼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실장

보육·유아 교육 정책이 주요 과제로 부각되는 이유는 부모들의 자녀 양육 부담을 완화해 출산율을 올리고, 아이를 미래 인적자원으로 잘 길러내야 국가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04년 이후 보육과 유아 교육 비용 지원을 지속적으로 넓혀 왔다. 지난해까지는 소득 하위 70%(4인 가구 기준 월소득 480만원) 가정의 자녀까지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정부 단가 기준)을 전액 지원해 왔다. 올해부터는 5세 누리과정을 도입해 취학 전 무상보육·교육을 실시하고 2013년부터 3, 4세 누리과정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보육비용 예산을 증액해 상위 30% 가정의 0~2세 아동에게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소득 하위 70% 가정의 3, 4세 아동에게 월 17만7000~19만7000원을 지원한다. 모든 만 5세 아동에게는 보육료와 유치원비 조로 월 20만원이 지원된다.

 세계적으로 만 3세 이상의 유아는 하루 중 일정 시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영아(0~2세)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정책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영아는 아동의 정서 발달이나 부모의 선택권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어머니 취업률이 80%에 가까운 국가에서도 육아휴직·유연근무·현금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부모가 집에서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영아기, 특히 출생 후 1년은 부모 등 주 양육자와 상호작용을 통해서 애착과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다. 향후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는 영아를 둔 어머니의 취업률이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종일반 시설보육료를 지원하는 쪽으로 획일화된 정책을 펴 왔다. 영아보육 비용은 월 40만~75만원에 달한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 정부 지원을 못 받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아에게 장시간의 시설보육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번 0~2세 무상보육 조치로 이런 추세가 심화될 것이다.

 어린이집 중심의 영아 지원정책에 그나마 변화를 준 것이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영아 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주는 것이다. 지원 대상이 차상위 계층(월소득 179만원 이하) 이하에 한정돼 있다. 이번 확대 조치에서 제외돼 대상과 지원액이 지난해와 같다. 이 때문에 부모들 간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려던 당초의 정책 의도가 무색해졌다.

 0~2세 보육료는 상위 30%까지 모두 확대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늘리는 게 맞다. 대신 양육수당 대상을 보육료와 같게 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일부에서는 양육수당 확대 정책이 어린이집 이용을 저해하고 여성의 노동 참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양육수당을 영아에 한정하고 지원액을 적정선에서 책정한다면 부모의 선택권을 높여 정책의 효율성이 올라갈 것이다.

 아이 기르기 좋은 나라의 공통점이 있다. 공보육·공교육 체계가 잘 돼 있고 보육료 지원 이외에 가족수당 등 현금지원을 한다는 점이다. 어린이집 보육 서비스가 민간 시장 위주로 돼 있는 데다 최근에 어린이집 보육료 일변도로 정책이 흐르는 점은 못내 아쉽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기획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