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쪽방서 10년 분투 … 대기업 김치 눌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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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통큰 김치’가 지방의 중소기업 매출을 끌어올렸다. 이 김치를 생산하는 충북 제천 들빛식품의 김영광 사장(왼쪽)과 제품을 기획한 롯데마트 정병구 MD가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충북 제천의 한 작은 식품업체가 6개월째 대기업을 제쳐 화제다.

회사 이름은 들빛식품. 7월 5억8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달까지 롯데마트 내 김치 매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통큰 김치’는 5㎏에 1만8000원으로 대기업 제품들보다 30% 저렴하다. 직원 다섯 명으로 2001년 회사를 차린 김영광(57) 사장은 “창사 이후 정점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들빛식품이 6개월 동안 벌어들인 돈은 21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 12억원이었던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들빛식품은 지난해 4월 한 중소기업박람회장에서 롯데마트 정병구 상품기획자(MD)의 눈에 띄었다. 정병구 MD는 들빛식품이 국내산 재료를 주로 쓰면서 가격을 낮춘 점에 주목해 ‘통큰 김치’를 기획했다. 그는 “가격은 싸지만 중소기업은 제 값을 받고, 소비자는 맛에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들빛식품 김 사장은 서울 구로동 방직공장이 첫 직장. 그러나 공장에 불이 나 직장을 그만둔 뒤 식품 부자재 유통업을 시작했다. 고추장부터 김치까지 다루면서 아파트 가정집에 배달하는 일도 했다. 그러다 김치의 전망이 밝다는 것을 파악하고 지금의 식품회사를 차렸다. 그가 개인적 연고도 없는 제천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고랭지 배추 산지가 가까워 싸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터도 배추 이외의 김치 재료를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에 정했다. 또 겨울이면 전남 해남까지 내려가 배추 농가와 직거래했다. 이 같은 안정적인 물량 확보는 가격인하로 이어졌다.

 초창기엔 좋은 배추밭 고르는 법도 몰라 고전했고 2년 전엔 배추파동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한국의 힘이 커지면서 김치사업이 점점 잘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지금도 그는 서울에 가정주부인 부인을 둔 채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제천공장 한 귀퉁이의 방에서 혼자 10년째 생활하며 회사를 일구고 있다.

 현재 이 회사는 전 재료를 국산화하고 천연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물량도 늘어 전엔 하루 최대 10t까지 생산했으나 현재는 12t을 만들어내고, 그중 7~8t을 ‘통큰 김치’로 내보낸다. 공장 내 시설은 총 가동 중이다. 김 사장은 “이전에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김치를 고급으로 만들어도 판로를 마련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마음 놓고 생산해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정병구 MD는 “전국에 수많은 김치 중소업체가 있다. 그러나 가격과 품질에 대한 고민을 이처럼 많이 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김치업계에서 중소기업은 설 자리가 없었지만 이제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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