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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생활지도 어렵고 보람 없어” 수도권 교사 명퇴 신청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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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선 지난해 말 교사 5명이 한꺼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교사 권위가 무너져 학생 지도가 어렵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는 노하우는 선배 교사에게서 도제식으로 배워야 하는데 그분들이 열정을 잃고 떠난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각 시·도교육청이 교사들의 명퇴(올 2월 예정)희망 신청서를 받은 결과 수도권에서 명퇴를 원한 교사가 크게 증가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사립 초·중·고교를 통틀어 920명이 명퇴를 신청해 지난해 2월(732명)보다 188명(25.6%)이나 늘었다. 경기도는 더 심각하다. 563명이 신청서를 내 44.7%(174명) 더 많았다. 인천은 122명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교사 명퇴는 매년 2월과 8월에 이뤄진다. 재직기간이 20년 이상이고 정년이 1년 이상 남았으면 신청 가능하다.

 명퇴 신청이 크게 늘어난 데는 교육현장의 급격한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생활지도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천교육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질병이나 승진 누락 등의 사유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학생들과의 가치관·세대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이 지난해 12월 전국 초·중·고 교사 2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6%(162명)가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 등으로 인한 교권추락과 교실환경 변화’를 명퇴 증가 이유로 꼽았다. 건강문제는 1.5%(3명), 개인사정은 4.5%(9명)에 그쳤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사들의 손발이 묶이고 권위까지 무너진 상태에서 교사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크다”며 “경기도에서 신청 인원이 급증한 건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명퇴 신청자가 급격히 늘면서 퇴직금 예산이 부족해 명퇴를 반려하는 상황도 생길 것 같다. 명퇴 교사는 남은 정년에 따라 월급의 절반 정도를 퇴직금으로 받는다. 한 명당 평균 8000만~9000만원 정도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확보한 명예퇴직금은 280억원으로 300여 명분에 불과하다. 경기도는 지난해보다 137억원 늘어난 457억원을 배정했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100여 명의 신청을 반려해야 할 처지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임용 대기자와 예비 교사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명퇴 교사는 다 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퇴직금 일부를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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