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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지갑을 털겠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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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상복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다들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새해 인사에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엔 부자를 궁지에 몰려는 사람이 많다. 심각한 이중성이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는 이런 바람이 더욱 세게 불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가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제대로 시동을 걸었다. 새해부터 과세소득 3억원 초과자에게는 38%의 세금을 물리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8800만원을 넘으면 똑같이 35%가 적용됐다. 입법을 주도한 이들은 마침내 이 땅에도 부자세가 도입됐다고 좋아할지 모른다. 더구나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가 막판에 뒤집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부유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게 바로 그거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소득 상위 20%가 내는 세금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부자들이 충분히 부담하는 구조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는 그런 세금을 내고도 여전히 가진 게 많으니 더 거둬도 좋다’는 주장을 편다.

 누구나 자기 재산은 아까워한다. 좌파도 똑같다. 아무리 부자라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가만 있지 않는다. 지키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당장 소득이 3억원을 조금 넘는 사람들은 그 밑으로 낮추기 위해 애쓸 것이다. 도와줄 기술자는 많다. 세금 없는 ‘조세천국’으로 재산을 돌리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수단이다. 전문가에게 수고료를 듬뿍 주더라도 무거운 세금에는 저항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결국 나라 곳간으로 들어오는 돈은 별로 늘어나지 않고 회계사와 세무사 주머니만 불려주게 될 것이다.

 2010년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2039만 명이었다. 이 중 40%가 넘는 840만 명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각종 비과세 조치로 이것저것 공제한 뒤 소득이 과세 기준에 미달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이 2009년보다 27만 명 더 늘었다. 그 결과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은 점점 겉돌고 있다. 좋게 보면 세금정책이 이미 저소득층을 상당히 배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은 세금정책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려고 애쓴다.

 ‘부자 지갑을 털어라’. 이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가진 사람을 압박하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 듯 하다. 양극화 해법엔 별로 관심이 없다. 정반대로 그걸 실제보다 부풀리는 일에 더 신경쓴다. 정권 창출에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파 정치인들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를 쓴다. 그런데 접근법이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좌파 장단에 춤을 추고, 일부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38%도 그 산물이다.

 그들 말대로 부유세라는 게 탄생한 걸로 치자. 이걸로 얼마를 거둬들일 수 있을까. 정부 추산은 약 6만3000명으로부터 7700억원이라고 한다. 세금감면 조치 일부만 없애도 벌충이 가능한 금액이다. 한 예로 주식양도차익에 비과세 혜택도 줄여야 한다. 국세청 직원을 동원해도 쉽게 거둘 수 있는 돈이다. 지난해 2월부터 6개월간 국세청이 고액·상습 체납자에게서 추징한 세금만 1조903억원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편법 증여를 한 204명에게서 추징한 세금도 4600억원에 달했다. 인터넷 불법도박 사이트만 뒤져도 당장 500억원쯤은 건진다고 전직 세무공무원은 말한다. 7700억원은 부자세를 운운할 필요도 없이 조용히 거둘 수 있는 돈이다. 계층 간 대립을 조장하고 정치적 피로감을 쌓으며 할 일이 못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