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강남은 임대 얻기 북새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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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인터넷 게임 개발업체 S사는 한달 안에 사무실을 비워줘야 한다.

건물주와 임대 재계약 협상에 실패한 탓이다.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터에 평당 2백50만원인 임대료를 4백5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부시설비 등 초기 투자비용 1억4천여만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S사와 이웃한 역삼동의 인터넷 보안업체 B사. 지난해 8월 임대료의 30%를 주식으로 주는 조건으로 D빌딩에 입주했다.

그러나 최근 재계약 협상에서 건물주가 주식을 돈으로 되사주고 임대료를 두배로 올려달라고 해 거리에 나앉을 형편에 놓였다.

서울 강남의 사무실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강남의 임대료는 평당 4백만~4백50만원으로 1년새 평당 2백만원 가까이 올랐다.

비어 있는 사무실도 찾기 힘들다. 강남의 사무실은 1천개 가운데 4개 정도만 남아 있다. '닷컴 위기' 로 사무실이 비고 임대료가 내려갈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있다.

이에 따라 임대료 분쟁이 잇따르고 있으며 테헤란로 주변에서는 사무실을 비우고 떠나는 중소 벤처기업과 그곳에 차고 들어오는 대형 벤처 및 외국기업간의 '자리 바뀜' 현상이 활발하다.

임대정보업체 두나미스의 홍영준 사장은 "임대 재계약이 몰려 있는 10~12월에는 벤처기업들의 이동이 본격화할 것" 이라고 말했다.

◇ 평당 임대료 4백만원 넘었다〓사무실 전문 중개업체인 오피스 월드가 최근 서울 시내 9백개 사무실을 대상으로 조사한 평균 임대료는 평당 4백14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강남구는 평당 4백22만원으로 1년 전 평당 2백46만원에 비해 70% 넘게 치솟았다. 테헤란로 등 목좋은 대로변의 1층 임대료는 평당 1천만원을 호가한다.

서울시 오피스 빌딩의 임대료는 지난해 8월 이후 가파르게 올랐는데, 올들어서 분기마다 10% 이상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 자리 바뀜 활발〓총면적 1천평 이상인 강남지역 건물의 공실률은 0.4%로 사상 유례없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면도로를 빼고는 빈 사무실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이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서울시 전체의 공실률도 0.8%로 역대 최저치다.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나간 사무실은 곧바로 자금력이 있는 대형 벤처기업이나 외국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다.

대기업이 투자한 이누카, 블루버드, 아이퍼시픽 파트너스 등이 최근 테헤란로로 터를 옮겼다.

"닷컴 위기론에도 강남 일대 사무실은 큰 영향을 받지않고 있다. 대기수요가 많아 사무실이 비는 즉시 채워지고 있다." 오피스 월드 김형규 팀장의 귀띔이다.

◇ 변두리로 임대 피난〓건물주들의 지나친 요구에 '탈(脫)테헤란로' 로 맞서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리눅스 전문업체인 A사는 지난달 1년여의 테헤란로 살림을 정리하고 분당으로 이사했다.

새 사무실의 평당 임대료는 2백만원. 테헤란로 보다 절반 이상 싸다.

강남으로 입성하려던 기업들이 살인적인 임대료에 놀라 송파.구로.목동.분당 등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강남 진입을 시도해온 상장업체 팬텍은 얼마 전 마음을 바꿔 강서구 화곡동에 사옥을 구했다.

평당 4백만원이 넘는 임대료를 주느니 변두리에 사옥을 갖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남의 공실률이 한자리 수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전후. 올 가을부터 강남지역의 사무실은 재계약이 봇물을 이루게 된다.

◇ 전망〓테헤란로를 비롯한 강남의 임대료 상승은 위험수위를 넘어섰지만 수급 여건상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 등 대기업 투자업체들의 대기수요가 많아 강남의 사무실 임대난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역삼부동산 이현호씨는 "현대i타워 등 신규 공급물량이 있지만 대기수요층이 워낙 두터워 사무실 부족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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