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끝마다 “이~뻐~” … 켕기는 어른들 많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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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에서 느끼한 동화를 들려주는 조지훈. 그는 “서수민 PD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새해엔 더 다양한 층이 공감할 개그를 하겠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 일곱 난쟁이는 백설공주를 살려줬을까.’

 그러니까 그게 시작이었다.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회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의 어느 날, 개그맨 조지훈(33)은 동료들과 ‘사마귀 유치원’ 코너를 짜고 있었다. 느끼한 동화 선생님 캐릭터는 어떨까, 백설공주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 어때…. 그런데 왜 난쟁이들은 공주를 살려줬을까. 누군가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예쁘니까.”

 그랬다. 다른 동화도 다 그랬다. 가난하고 예쁜 공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백마 탄 왕자에게 시집을 갔다. 마치 예뻐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듯이. 성냥팔이 소녀든, 인어공주든 무조건 “이~뻐~”라 하는 ‘쌍칼’은 그렇게 나왔다. 조지훈을 12월 30일 본지 회의실에서 만났다. 동화책보다 묵직한 책이 잘 어울리는 말쑥한 차림이었다.

 “처음부터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자 마음먹은 건 아니에요. 그저 타성에 젖어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꼬집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가 가장 깊이 젖어있는 타성이 바로 외모더라고요. ‘왜 난쟁이가 공주를 살려줬을까’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난쟁이들이 착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런데 어른들은 ‘예쁘니까 도와주지 못생기면 되겠냐’고 하죠.”

 거기에 착안해 모든 동화 주인공을 ‘예쁘다’ 하고 본 게 주효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있었는데 불에 비친 자기 모습이 이뻐~” “홀어머니가 이뻐~ 앤틱한 매력이 있어~”라 할 때 객석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정말 웃긴데 사실 좀 슬프다.

 “사람들이 그만큼 지쳐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예뻐야만 되는 사회에서 너도나도 얼굴에 손을 대지만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 ‘여자는 나이 들어도 예뻐야 된다’는 씁쓸한 교훈으로 끝나는 내 이야기에 다들 웃는 게 아닐까.”

 -이름은 왜 쌍칼인가.

 “이왕 웃길 거 의미를 부여하면 좋을 것 같았다. 성형을 보통 ‘얼굴에 칼 댄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성형하며 외모에만 집착하는 걸 떠올릴 수 있게 ‘쌍칼’이라 지었다.”

 -솔직히 예쁜 여자 좋아하지 않나.

 “물론 예쁜 사람 좋다. 그런데 그 기준이 주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놓고 강요하고 있다. 눈 크고 코 높고 얼굴 작고…. 사실 만나서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정말 예쁜 건데 말이다. 올해는 ‘예쁘다’에 각자가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느끼한 아저씨 역할을 하느라 수위 조절이 힘들 때도 있겠다. (※지난달 25일 성탄절 특집에서는 루돌프 사슴이 채찍을 맞고 기뻐한다는, 다소 아슬아슬한 표현이 나왔다.)

 “어휘 선택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하니까. 루돌프 사슴 얘기를 어른들은 성적인 코드로 이해했지만, 아이들은 ‘루돌프가 구박을 당하면서도 선물을 나눠주니까 기뻐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노골적인 단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단어도 지양하는 편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A4 용지 절반 가량의 대본. 짧지만 어휘 선택에 신중을 기하느라 암기는 오래 걸린다고 했다. ‘연구원 같다’고 하니 이번에는 때묻은 아이디어노트를 꺼내 보여줬다. 빼곡하게 적힌 아이디어를 버리기 아깝지 않느냐 물었다.

 “버려야 또 다른 걸 생각하죠. 버려야 해요.”

 버려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믿는 건 그가 살아온 시간과도 통한다. 록밴드 보컬, 음악다방 DJ, 대학축제 MC, 쇼핑몰 이벤트 MC 등을 거쳐 서른 다 된 나이에 데뷔한 그다. 쉼 없이 변해온 에너지로 올해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쌍칼로만 아시는 분들 많은데 올해는 ‘조지훈’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뜨겁게 노력할 테니, 시원하게 웃는 한 해 되세요.”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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