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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김정은 체제 다루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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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세계적 명사들의 결혼식 관련 언론보도나 중계는 그들의 성장과정과 가족, 신부의 드레스와 예물, 하객들의 면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차를 탄 결혼행진에 이르면 방송중계는 절정에 이른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관련 언론의 폭발적 보도를 보면서 희한하게도 명사들의 결혼식 중계가 떠올랐다. 김정일의 일생에서부터 시작한 보도는 김정은과 북한의 파워엘리트, 영결식, 추모대회, 신년공동사설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이른바 북한 전문가들의 해설이 곁들여지는 것도 명사들의 결혼식과 유사했다.

 언론의 집중 보도 덕분에 이제 일반국민들도 장성택이나 이영호 등 북한의 고위층 이름 몇 명쯤은 알게 되었고 연말 모임에서 10여 명의 이름을 줄줄 대면서 실력을 과시하는 전문가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는 몇 년 전 황우석 사태가 전 국민을 줄기세포 전문가로 만들었던 기억과 오버랩 된다.

 김정일 사망 보도를 보면서 황우석 교수나 명사들의 결혼이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언론의 집중 보도 속에서 문제의 본질보다는 표피를 관찰하는 한계에 대한 허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정일 사망 이전 북한 관련 대내외 관심은 단연 체제의 불안정성과 통일논의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오히려 북한체제의 안정성이 담론을 압도하니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체제 안정성이란 김정은의 공식승계가 무리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단기적 전망이었으며 현재까지 틀린 말도 아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안정성에 대한 평가가 북한은 변할 것이 없으니 우리만 변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곤란한 일이다.

 이제 장례식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언론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 모두 북한 문제의 본질을 볼 때다. 평양과 북한의 파워엘리트, 그리고 장례절차에 집중됐던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북한주민들의 일상적인 삶, 북핵 문제와 통일 문제로 돌려야 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 수년간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으로 동원하고 이를 평양에 집중시켰다. 북한은 평양에 집중할 자원마저 부족하자 평양의 일부를 잘라내 면적을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평양과 지방의 격차가 확대됐으며 차별과 수탈 속에 지방의 민심 이반은 커졌다. 부족한 재원의 배분 과정에서 엘리트들과 일반주민들 간, 계층 간의 격차도 더욱 커졌다. 심지어 군대에서조차 피복과 식량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내정된 후 벌어진 대규모 숙청은 엘리트들의 불만과 불안의 원인이기도 하다.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등 상반기 행사가 끝나면 잠복했던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다. 마치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이후 과도한 지출의 후유증으로 북한의 어려움이 시작되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이미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강성대국의 구호를 약화시켰고 스스로 선포한 축제의 해에 돌격전과 같은 동원 구호를 사용하는 등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후 위기의식을 느끼며 민감한 상황에서 내부결속을 최우선시하며 움츠려 있다. 우리가 이를 관리하고 안심시킬 필요성은 분명히 있으며 나아가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평가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우리 대북정책의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사고와 정책의 유연성이지 무원칙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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