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공포 되살린 ‘호르무즈 쇼크’ … 국내 부동산 규제 480건 완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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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호 03면

글로벌 경제의 시선이 유럽 금융가에서 이란 호르무즈 해협으로 갑자기 쏠렸다.
한동안 잊고 살던 고유가 공포가 이곳에서 다시 살아날 조짐이다.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WTI·서부텍사스유)가 뚫려 앞으로 만만치 않은 경제 이슈가 될 것임을 보여 줬다. 2006년 이후 네 차례의 유엔 제재에도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지 않자 미국은 원유 수출을 막는 제재안을 최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내일(2일)부터 발효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섰다. 미사일과 핵잠수함을 끌고 나와 해상훈련을 하며 시위 중이다.
이란의 레자 라이미 제1부통령은 “제재안이 발효되면 한 방울의 원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유조선 중 3분의 1이 다니는 곳이다.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에서 생산된 원유가 각국으로 빠져나가는 통로다.
에너지컨설팅 업체인 쇼르크는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14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0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양측의 정치적 엄포로 끝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태가 점점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더 많다. 2012년 내내 유가가 100달러 위에서 놀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유가는 실물경제 파장만 있는 게 아니다. 고유가 행진으로 주식·환율·채권시장까지 요동쳐 손해를 본 아픈 기억이 국내 투자자들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다. 투자자가 주시해야 할 리스크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유럽 위기도 우리 금융시장에 여전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 위기의 핵심은 두 가지다. 각국의 재정난과 은행들의 ‘돈맥경화’다. 재정난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돈줄이 막힌 523개 은행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서 지난주 대출을 해 줬다. 3년 만기 1%로 480억 유로를 풀었다. 도이체방크 등은 이 돈으로 이탈리아 국채를 샀다. 이탈리아가 발행한 3년 만기 국채(평균 금리 5.62%)를 샀다면 앉아서 4% 이상의 차익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도 유럽 은행들은 향후 파산 위험성을 고려해 10년 만기 국채는 사기를 꺼렸다. 대신 ECB에 돈을 예치했다. ECB에서 1%에 빌린 돈을 0.25% 이자를 받고 재예치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이렇다 보니 이탈리아가 지난해 12월 27일(현지시간) 발행한 10년 만기 국채(85억 유로) 중 15억 유로는 팔지 못했다. 은행들이 장기국채를 적극적으로 사 줘야 유럽 위기가 수그러든다. 이탈리아의 경우 올 2월부터 약 3개월간 917억 유로어치의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이탈리아 국채 대란설의 근거다. 이런 영향으로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7%를 넘겼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도 7%를 넘긴 뒤 구제금융을 받아 해결한 전례가 있다. 유로화 환율도 심리적 지지선인 1.3달러를 밑돌아 한때 1.285달러까지 갔다. 1월 이후 최저치로 그만큼 글로벌 경제 불안을 가중시켰다.
살얼음판 같은 국제 금융시장에 김정일의 사망은 또 다른 리스크다. 주식시장에서 북한 리스크는 찻잔의 태풍같이 하루 만에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12월 27일 오전 10시35분. 강보합권에 머물러 있던 코스피가 “어~” 하는 5분 새 약 40포인트 급락했다. 황당한 루머 때문이었다. 중국의 북한 파병설, 김정은 사망설이었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2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떨어졌다. 특정 세력이 고의적으로 하락을 유도(배당락 기준일이었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10위 경제대국에서 ‘북한쯤이야’ 하면서 애써 외면하던 투자자들은 ‘김정은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음을 직감했던 사건이었다.
이런 가운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에 조문을 가 김정은과 인사한 것이 눈길을 끈다. 현 회장은 2005·2007·2009년에 김정일을 독대해 대북사업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현 회장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중단된 대북사업을 풀지 못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조문을 계기로 현 회장의 향후 대북사업 물꼬 트기 작업이 어떻게 될지 관심거리다. 현 회장은 또 시숙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상대로 한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지난해 11월 현대건설 매각입찰 과정에서 발생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관한 형사고소·고발을 조건 없이 취소한다고 12월 29일 밝혔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차와 네거티브 공세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하종선(부회장) 전략기획본부장도 그룹 총괄업무에서 물러났다. 현 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위해 정 회장 측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7.7%)을 넘겨줄지 여부도 관심을 끈다.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주가도 이런 움직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참고할 만한 경제 동향으로는 내년부터 부동산과 관련한 규제 480건이 무더기로 완화된다. 초고층 아파트의 가구별 면적 제한(297㎡)이 없어져 외국 영화에서 봄 직한 초대형 펜트하우스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달 중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도 대거 해제된다. 말 많았던 버핏세(부자증세)는 없던 일로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을 하지 않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경기 하강 때 세금을 신설하는 건 무리라는 정부 논리를 받아들였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중소기업의 주식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제3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중소기업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투자 위험이 커 개인투자자가 아닌 벤처캐피털과 연기금 등만 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방송인 CNBC는 10년간 지속된 금값 상승이 막을 내리고 향후 2~3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연내에 온스당 13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 최대 수요처인 인도 등의 금 수요가 줄고 생산량은 더 늘었다는 경제원론적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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