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성공한 워홀보다 상처입은 워홀이 소중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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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예술, 상처를 말하다
심상용 지음, 시공아트
340쪽, 1만8000원

예술은 상처에서 비롯한다. 허나 ‘성공한 예술가’를 천재로, 부자로, 영웅으로 대접하는 오늘날이다. 이들의 예술을 낳은 상처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새삼스럽다. 책은 짐짓 이 같은 세태를 비판한다. 한 인간으로서 예술가가 받은 상처 그 자체에 주목한다.

 성공한 예술가의 전형이 된 앤디 워홀(1928∼87)만 해도 그렇다. 마릴린 먼로·재클린 케네디·마오쩌둥(毛澤東) 등 유명인의 초상화를 대량생산하듯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냈는데도, 그의 작품은 매 경매 때마다 기록을 경신한다. 은색 가발, 선글라스로 치장한 파티광 워홀 자신도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누구도 가격이 아닌 그의 작품, 기행과 성공신화가 아닌 워홀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왜소하고 못생긴 무명 삽화가 워홀라(워홀의 본명)는 촌스런 이름을 바꾸고, 백반증으로 반점이 진 피부를 짙은 화장으로 가리고는 제2의 자아 ‘워홀’을 창출했다. 자기를 잃어버릴 만큼 스스로를 증발시키며 성공을 향해 내달렸다. 저자는 열등감으로 심연이 찢겨 나갔던 인간 워홀라를 기억하지 않을 때, 이미지가 진실을 몰아내는 싸구려 성공 서사에 매몰된다고 지적한다.

 힘을 지향할수록, 그 예술은 힘을 잃는다. 가난한 흑인이자 동성애자이며 마약중독자였던 장 미셀 바스키아(1960∼88). 그는 워홀과 함께 매년 작품이 가장 잘 팔리는 현대 미술가 1, 2위에 오른다. 그러나 판매실적으로 포장된 성공신화에만 주목할 때, 그의 비참한 삶은 소비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는 사이 바스키아가 표현했던 밑바닥 인생은 오늘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받을 보상과 무관하게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는 것. 이 지점에서 예술은 빛을 발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막내 아들을, 2차 대전에서 손자를 잃은 독일 미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는 의사인 남편과 함께 평생 빈민가에서 생활했다. 스스로 약자의 자리를 택하고 고통을 나눈 것이다. 우리가 예술을 찾는 이유도, 상처를 직시한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기 위함이 아닐까.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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