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처럼 쏟아지는 ‘e-공짜’ 바로 읽기

중앙일보

입력

소비자가 갖고 있던 소박한 공짜의 법칙은 디지털 문화와 경제 속에서 변화돼야 한다. 공짜에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사용해주는 것에 대한 수익을 환원받아야 한다. 내친김에 해당 서비스 업체에 스톡옵션이나 소비자에 대한 이윤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무한복제 가능한 디지털 세상

공짜!

사적 재산과(교환가치에 근거한) 상품 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매력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아니 공짜에 대한 찬사는 ‘매력적이다’라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이는 가장 혁명적인 경제 정책이자 가장 과격한 정치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서슴지 않고 구사하랴(물론 공짜를 통한 사회 불안을 막기 위해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도 존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소비 주체임을 몸 속 깊은 곳까지 훈육받아온 대다수의 현대인은 태생적으로 공짜를 좋아하는 법이다.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각종 공짜 생필품, 대형 쇼핑몰 식품 코너에서 맛볼 수 있는 공짜 시식, 그리고 무료 시음을 빙자한 낮 술 먹이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소비자의 중요한 취향을 약삭빠른 장사꾼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짜라는 미끼를 활용한 기업들의 마케팅은 극도로 발달돼 있다. 즉 공짜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공짜가 아닌 고도의 상술들이 속속 발명되고 있는 것이다. 잡지보다 비싼 부록을 제공하거나 햄버거에 약간의 웃돈을 얹으면 인형을 주는 등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마치 공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이 성행한다.

물론 공짜를 둘러싼 문화가 항상 소비자의 이득이나 다수의 유쾌함만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공짜를 빙자한 기업의 마케팅처럼 공짜를 둘러싼 관계는 국가, 시장, 소비자가 혼재하면서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쇼핑백이다.

쇼핑백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의 너무나 정당한 권리였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몇 개 더 얻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짜의 대표적인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등장한 쓰레기 종량제와 쓰레기 봉투 이데올로기 속에서 너무나 당연했던 공짜의 상징이,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고 사는 상품으로 어느 날 갑자기 둔갑해버렸다. 그 이유인즉슨 다음과 같다.

‘쇼핑백을 공짜로 주면 소비자들이 너무나 쉽게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 오염이 가속화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되도록 시장 바구니나 보자기를 사용하여 환경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 개인이 경제적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심적 부담을 통한 쇼핑백 소비를 감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는 환경 보존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웃기는 얘기다.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 환경친화적이고 생태주의적인 공동체를 위하여 쇼핑백을 비롯한 일회용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너무나 지당하다. 그리고 이를 반영구적인 시장 바구니와 보자기로 대체하려는 정책 역시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왜 환경친화 정책을 위한 경제적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와야 하는가이다. 개인의 심적 부담을 통한 규제가 최선의 방법이라서?

당연히 이 부담은 물건을 팔아 이득을 챙기는 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나마 존재하는 소비자들의 공짜에 대한 희열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기업이 부담하던 ‘물건 판매에 따른 포장 및 운송 편이를 위한 책임(?)’의 연속선상에서 기업 스스로가 환경친화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쇼핑백을 안 가져가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득을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환원한다거나(지금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만큼만 준다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 봉투로 포장을 해주든지…

물건 팔아 돈 벌지 말라는 디지털 경제

이처럼 공짜를 둘러싼 국가, 시장, 소비자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중요하다. 더욱이 물질적 한계가 적은 디지털 문화에서 이러한 공짜 문화의 위력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고, 이러한 정보의 기술적 특성상 무한 복제와 이동이 가능하고, 이를 고민하는 장사꾼들이 거품처럼 증가하는데 공짜가 활성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경제적 비용이 적게 드는 각종 정보 서비스에서부터 수많은 사이트가 제공하는 ‘클릭 한 번에 경품과 캐시백’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산업 사회의 상품교환법칙을 허물고 공짜 세상을 선언하고 있다. 국제전화도 공짜, E-메일도 공짜, 각종 프로그램 다운도 공짜, 심지어 보너스 상품까지….

하지만 이쯤에서 입이 떠억 벌어지기보다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 것은 왜일까? 공짜에 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면 그 대답이 너무나 쉽게 보이는 법이다. 먼저 당신이 사용하는 무료 E-메일 서비스가 있다. 당신은 공짜로 이 서비스를 사용한다. 가끔 반가운 메일이라도 날아오는 날이면 당신은 이 서비스업체에 고마움마저 느낀다. 이렇게 유용한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다니….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편리함을 느끼는 만큼 기업은 경제적 이윤을 남기는 법이다. 아니 왜? 공짠데…. 천만의 말씀. 산업 사회와 정보 사회의 돈 버는 방식이 변했을 뿐이다. 서비스의 편리함만큼 사용자의 수는 늘어나고, 사용자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사이트와 운영자의 경제적 이익은 고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경제라고 불리는 현대 자본주의는 물건의 판매 이익보다 금융자본을 통한 이윤 창출이나 브랜드 효과에 집중한다. 애초에 기업은 당신이 낼 수 있는 정보 사용료나 서비스 사용료 등의 푼돈보다 사이트의 인지도 증가를 통한 광고비나 주식 상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큰 돈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즉 인터넷 혹은 디지털 경제라고 불리는 신경제 속에서 공짜의 법칙은 바로 ‘절대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는 전자상거래의 철칙과 직결된다. 공짜의 위력을 통해 사용자를 모으고, 이를 통해 광고비와 주가를 올리는 전략이 인터넷 기업의 주된 흥행 요소인 것이다.

물론 디지털 패러다임에서 공짜 문화에 대한 기업의 공략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현대 자본주의는 공짜라는 함정을 통해 기업의 무한 독점과 이윤 창출까지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네트워크 효과’와 ‘잠김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공짜로 던져진 디지털 상품은 수많은 소비자군을 형성하고, 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사용자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경쟁력을 가지는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는 법이다. 디지털기술의 기본은 표준화이고, 한번 표준화된 기술과 네트워크는 자신의 표준을 근거로 무한하게 재생산되기 때문이다(네트워크 효과).

따라서 공짜를 무기로 표준화된 상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표준화를 따르지 않고는 호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상품은 아무리 경쟁력이 뛰어나도 시장 진입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해지는 것이다(잠김 효과). 즉 디지털로 대표되는 신경제에서 공짜의 법칙은 흥행 요소를 넘어 이제 거대 기업의 시장 독점을 위한 주된 무기가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소비자가 가지고 있던 소박한 공짜의 법칙은 디지털 문화와 경제 속에서 이제 변화되어야 한다. 공짜에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사용해주는 것에 대한 수익을 환원받아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당장 당신이 사용하는 각종 무료 서비스의 약관을 확인하자. 혹시라도 무료이기 때문에 사용 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명시되어 있다면,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돈을 벌고 산업 사회의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공짜 사용에 대한 권리를 기반으로 해당 서비스 업체에 스톡옵션이나 소비자에 대한 이윤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