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에 대학 입학 … 동기들과 ‘궁중술 도가’ 벤처기업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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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째 궁중 술 ‘계룡백일주’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성우씨.

올해 나이 쉰 살인 이성우씨는 올 봄 호서대 학교 식품공학부 1학년에 입학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만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그는 호서대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젊은 동기들과 벤처기업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궁중 술 ‘계룡 백일주’를 사업 아이템으로 ‘궁중 술도가’를 창업할 생각이다.

 백일주는 백일 동안 술을 익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산인 계룡산 일대에서 산의 정기를 담아 빚던 술이다. 1989년 이후 계룡산의 이름을 앞에 따 계룡백일주라 불렸다. 계룡백일주는 조선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인 이귀(李貴)의 부인인 인동 장씨가 왕실에서 백일주 제조법을 하사 받아 임금에게 진상해온 술이라 전해진다.

 연안 이씨 집안의 가양주로 맥을 이어오던 백일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4대 자손 이황씨의 아내 지복남씨가 1989년 ‘충청남도지정무형문화재 제7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뒤부터다. 이후 술맛 좋다는 입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기능보유자인 어머니로부터 제조 비법을 전수 받은 이씨가 백일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이씨가 처음부터 백일주를 배웠던 것은 아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택해 6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다. 회사생활과 타향 생활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어머니의 권유로 귀향해 백일주 비법을 하나하나 몸으로 배워나갔다.

그 후 집 지하공간에 공장을 차려 사업화를 시작했다. 전통 제조법을 고수하면서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노력의 결실로 1997년 전국 우리농림수산식품 대축제에서 민속주 부문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한국관광명품으로 지정되는 등 대한민국 대표 민속명주로 알려지게 됐다. 이씨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니 하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일어났다. 그러다 기업인 모임에서 호서대 인문대 학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돼 호서대에 있는 기업인특별전형에 지원, 만학도로서 대학입학의 기쁨을 이뤄냈다.

 호서대 식품공학과 1학년, 이 전수자의 새로운 도전이 이룬 결과다. 만학도로서 공부하다 보니 화학이나 컴퓨터 등 어려운 과목들이 많아 힘들다. 안 그래도 늦게 시작한 공부인데 어린 동기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움도 있지만 꿈이 새로 생겼기에 더욱 노력한다.

 뜻있는 동기들과 함께 이씨가 만든 ‘궁중술 도가’로 벤처사업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전수자는 “호서대 동기들과 전통과 학문을 조화시켜 만든 벤처기업이 세계적인 민속주 기업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조명옥 객원기자

◆계룡백일주=항아리를 땅속 깊이 묻고 찹쌀, 백미, 누룩, 솔잎, 오미자. 진달래꽃, 재래종 국화꽃을 재료로 빚어 증류시켜서 벌꿀을 넣어 술을 만든 뒤 백일 후에 개봉한다. 진달래꽃과 오미자, 황국은 잘 말린 것을 엷은 천에 싸서 독에 담가둔다고 한다. 술을 여과시킬 때 창호지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창호지로 걸러내서 색이 맑고 끈기가 있다. 오미자·황국 등에 의한 특유의 향과 빛깔을 띠는 것이 특색이며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17°∼18°이다. 오래될수록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지며 영구 보존이 가능한 한국 전통 민속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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