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프랜차이즈 History (3) - 콜로라도 로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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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로키스가 처음으로 빅 리그에 참여한 해는 1993년이지만, 사실 이 팀의 창단은 훨씬 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메이저 리그에서는 팀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는 프랜차이즈의 확대가 주춤해진 상태였다. 특히 내셔널 리그에서는 1969년 이후 새 팀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1985년 8월에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와 콜로라도 주 덴버를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을 NL에 참가시키는 안이 승인되었고, 이어 1991년에는 이 두 팀이 팀 명칭을 각각 ‘플로리다 말린스’와 ‘콜로라도 로키스’로 확정했다.

로키스는 빅 리그 참가를 앞두고 돈 베일러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자유 계약 선수로 풀린 안드레스 갈라라가를 영입하는 등 신생팀답지 않게 전력 구축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NFL 덴버 브롱코스가 사용하는 마일 하이 스타디움을 임시 홈 구장으로 하여, 첫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 해에 로키스가 얻은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갈라라가는 새 팀에서 맞은 첫 해에 .370의 타율로 리그 수위 타자가 되었는데, 신생팀에서 타격왕이 나온 것은 역사상 최초였다.

또한 로키스는 시즌 막판의 분전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밀어내고 67승 95패로 지구 6위에 올라, ‘첫 해에는 꼴찌가 불가피하다’라는 인식을 불식시켰다. 이 해에 로키스가 올린 승수는 신생팀으로서는 최고 기록이었다.

이듬해에 로키스는 더욱 향상된 모습을 과시하며 지구 3위를 차지했다. 시즌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첫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도 있었지만, 8월에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되는 바람에 로키스는 그 꿈을 접어야 했다.

1995년은 로키스로서는 영원히 기억할 만한 해이다. 그것은 새로 건설한 쿠어스 필드가 팬들을 맞이한 첫 시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해에 로키스는 LA 다저스에 이어 지구 2위를 차지했고, 와일드 카드를 따내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다.

로키스는 동부 지구 우승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맞이한 디비전 시리즈에서 3차전만을 따내는 데에 그쳐 1승 3패로 물러났다. 그러나, 창단 후 3번째 해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은 로키스가 처음이었다. 종전의 창단 후 최단기간 내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1969년 뉴욕 메츠(8번째 시즌)이었다.

이 쾌거의 주역은 댄티 비셰트와 새로 영입된 캐나다 출신의 외야수 래리 워커였다. 비셰트는 40홈런으로 이 부문 리그 수위에 올랐고, .340의 타율과 102타점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작성하였다.

그는 이 해에 유력한 NL MVP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신시내티 레즈의 배리 라킨에 밀려 2위에 그쳤다. 또한 전년도에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돌풍을 주도했던 워커는 36홈런과 101타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전년도에 부상으로 중도 하차의 아픔을 겪었던 갈라라가도 31홈런을 날려 기대에 부응했으며, 멕시코 출신의 3루수 비니 카스티야는 32홈런과 90타점을 올렸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올스타전 선발 출장의 영광을 안았다.

이듬해인 1996년, 갈라라가는 47개의 홈런을 날려 처음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하였으며 NL에서 가장 많은 150타점을 올렸다.

또한 엘리스 벅스가 .344의 타율과 128타점, 40홈런을 기록하여 팀의 간판 스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비셰트도 31홈런과 141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LA 다저스에서 로키스의 창단 멤버로 넘어왔던 에릭 영은 이 해에 NL에서 가장 많은 53회의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워커는 부상으로 시즌을 절반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로키스는 그 영향을 극복하지 못해 파드레스와 다저스에 이어 지구 3위에 그쳤다.

1997년, 워커는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는 팀 역사상 최고 기록인 49 홈런으로 이 부문 리그 수위를 차지했으며, 우익수로서도 놀라운 수비 플레이를 펼쳐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결국 시즌 후 기자단은 첫 캐나다인 리그 MVP를 탄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갈라라가는 140타점으로 이 부문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 해에 로키스는 전년도와 같은 지구 3위에 랭크되었다.

1998년은 로키스로서는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즌이다. 팀의 1루를 책임지던 갈라라가가 브레이브스로 떠났고, 이는 전력에 큰 손실이 되었다.

이 해에 워커는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카스티야도 막판까지 타점 부문 타이틀에 강력히 도전했으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에 밀려 로키스의 슬러거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8 시즌에 로키스는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제외하면 지구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인 77승 85패를 기록하였고, 이 여파로 베일러 감독은 팀을 떠나야 했다.

로키스는 1999 시즌을 앞두고 짐 릴랜드 감독을 영입하였다. 릴랜드는 90년대 초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동부 지구 최강으로 이끌었으며, 1997년에는 플로리다 말린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끈 명장이었다. 그러나 은퇴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이 노감독은 새 팀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99년을 지구 최하위로 마친 뒤, 릴랜드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버디 벨이 그 자리를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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