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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킹한 공이 라인 너머 떨어졌다 … 그래도 득점, 상대도 인정 … 법관들이 배구장에 가야 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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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이의 진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명판결이 서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역사에도 있다. 고려 문신 손변이 솔로몬 못잖다. 그가 경상도 안찰사로 있을 때 남매간의 송사가 있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재산을 출가한 딸에게 물려주고 어린 아들한테는 검은 갓과 검은 옷,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권만 남겼다는 거였다. 아들이 장성한 뒤 억울하다고 고소를 했다.

 손변이 결론을 냈는데 이게 명판결이다. “돌아보건대 어린 아들을 돌볼 사람은 누이뿐인데 똑같이 재산을 나눠주면 동생을 양육하는 데 지극하지 않을까 우려한 것이다. 장차 아이가 어른이 돼 이 종이에 소장을 써서 의관을 정제하고 관가에 제출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판결을 들은 남매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고, 손변은 그들에게 재산을 반씩 나눠주었다.

 이 일화는 이재현의 『역옹패설』에 기록돼 고려시대의 상속제도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에서는 사실(史實)보다 더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법관의 신뢰 말이다.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해줄 거라 믿지 못했다면 남매의 부모가 그런 모험을 할 수 있었겠느냔 얘기다.

 그러한 신뢰는 명판결 몇 번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자칫 사소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구축되는 것이다. 법관의 판결이 씨줄이 되고 언행과 태도, 처신이 날줄이 돼 촘촘히 짜지는 것이다. 어제 보도된 서울고법 이한주 부장판사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법관 개인의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지만 그로 인해 사법부 전체의 명예와 신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미 미디어가 된 SNS에 법관들이 편향된 시각과 저속한 표현의 글을 올려댄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내 올이 풀리고 말 터다. 어떤 이념에 동조하는 국민이건 마찬가지다.

 2006년 남자배구 월드리그 결승전 때다. 마지막 5세트, 12-13으로 뒤진 프랑스 선수가 스파이크를 날렸다. 브라질 선수가 블로킹한 공이 옆줄 밖에 떨어졌다. 하지만 주심은 브라질의 득점을 선언하는 게 아닌가. 관중석이 술렁였지만 프랑스 선수는 공이 자신의 몸을 맞고 나갔음을 인정했다.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주심에게 보내는 신뢰의 표시였다.

 ‘코트의 포청천’ 김건태 심판 얘기다. 프랑스가 우길 만도 했지만 공정한 판정으로 소문난 그였기에 불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절제된 사생활로 유명하다. 판정에 영향을 미칠까 팀 관계자들하고는 말도 섞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민감한 경기들은 어김없이 그의 몫이 된다. 어느 쪽의 불만도 없는 까닭이다. 우리네 판관들이 음미해볼 대목일 터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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