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기업 현금인출기’ 오명…중국 증시, 내년엔 괜찮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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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내년도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가 지난 14일 끝났다. 통상 11월 말 늦어도 12월 초에 열렸던 예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1994년 이후 역대 회의 중 가장 늦게 시작됐다. 회의 결과도 외견상 별게 없었다. 정책기조를 2011년과 같이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의 날짜에서부터 중국경제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깊은 고민이 엿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지금 실업률이 9%여서 난리지만, 중국은 9%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 무슨 고민이 있었던 것일까?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풀 돈 다 풀었다…남은 건 긴축뿐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가 나자 ‘케인스가 울고 갈 정도’로 화끈하게 돈을 풀었다. 4조 위안의 정부 지출과 10조 위안, 한화로 1800조원이 넘는 은행대출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부동산 투자에 불을 지펴 불황의 계곡을 넘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의 40%에 불과하다. 그런 중국이 2007년 이후 3년간 미국이 푼 돈의 3배가 넘는 돈을 풀었다. 그 결과 중국의 광의통화 대비 국내총생산 비율(M2/GDP)은 1.8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마디로 통화과잉이다.

 과감한 재정정책과 30%가 넘는 통화공급을 통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경기는 돌려놓았지만 시장경제의 초년생에게는 버거운 상대가 나타났다. 지방정부 채권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경기는 잡았지만 물가 상승 압력은 장난이 아니다.

 중국은 30%대였던 통화증가율(M2)을 최근 12%까지 낮추었다. 물가도 정책 목표치인 4%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긴축 모드다. 이유는 인플레 압력 때문이다. 그간 엄청나게 풀어놓은 돈이 돌기 시작하면 인플레는 불 보듯 뻔하다. 경기 하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2012년에 화끈하게 통화를 늘리거나 재정정책을 쓰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축을 소비로…내수에 ‘다걸기’

중국의 경제 사이클은 국가주석의 임기인 5년의 정치 사이클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 중국은 주석이 5년 임기이지만 중임을 하기 때문에 10년을 집권하는 구조다. 최근 30여 년간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의 임기 중 경제성장률을 보면 집권 전반 5년의 성장률이 후반 5년의 성장률보다 높은, 전형적인 ‘전강 후약’이었다. 2012년은 후진타오 주석의 임기 마지막 해다. 2012년 중국경제는 5년 단위 정치·경제 사이클의 하락기와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가 맞물려 있어 경기 하강이 불가피하다. 다만 그 정도와 폭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지면 고용 때문에 전쟁이 난다. 그러나 금리와 지준율을 최고치로 올려놓아 물가와 투기성 ‘핫머니’만 잠잠해진다면 금리는 3~4번, 지준율은 10번 이상 내릴 여유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경기 하강 대책으로 투자나 통화 증발이 아니라 내수 확대를 통한 경기 활성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 정부는 정부 소비를 민간 소비로 돌리고, 과도한 가계저축을 소비로 전환하면, 많은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10조 위안의 돈을 퍼넣어 경기를 활성화했던 2008년보다 더 좋은 GDP 증가 효과를 낸다는 답을 찾아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2012년에 내수에 올인하는 전략을 쓸 예정인 것이다.

중산층 확대 전략…증시 반등에 호재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은 한국 수출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중국에 대해 애정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중국펀드 투자에서 큰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와 증시의 괴리는 한국의 투자자들에겐 황당한 경험이다. 어떻게 경제는 세계 최고인데, 주식시장은 최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실상은 이렇다. 중국 증시가 중국 지방 국유기업과 은행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가 유럽 투자자들의 현금인출기 노릇 하느라 주가가 널뛰듯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은 금융위기로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방정부들이 지방 소재 대형 국유상장기업을 통해 증자를 하고 이 회사들을 통해 대형 신사업을 벌여 지방의 경제성장률을 높였다. 그 결과 대형 상장기업들은 증자 물량 압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또한 10조 위안의 대출 중 부실을 우려한 정부가 충당금을 쌓기 위해 모든 은행에 대해 증자를 명령, 은행이 증시를 통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가는 바람에 유동성의 씨가 말랐다. 중국은 증시가 속락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하반기에 2007년 금융위기 전보다 더 많은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고 그 후유증이 2011년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중앙경제공작회의의 주요한 안건 중 하나가 바로 “중산층의 비중을 높인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육성은 중국이 생산경제에서 소비경제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중국 정부는 2011년부터 구조적인 감세 조치와 사회안전망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이 내수중심 경제, 소비중심 경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증시 수급 측면에서 호재다. 국유기업을 통한 증시 자금 빼가기도 멈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증시가 최근 2년간의 국유기업 현금인출기 역할에서 벗어나면 자연스레 반등이 나올 수 있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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