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일의대수(一衣帶水)와 순망치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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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이후 중국은 양즈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여러 왕조흥망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양즈강 북쪽에는 5개의 북방 소수민족에 의해 16국이 건국되었으나 북위(北魏)에 의해 수습되었고 북위에서 분리되어 나온 북주(北周)의 양견(楊堅)이 제위를 물려 받아 수(隋)를 세웠다. 남쪽에는 4개의 왕조가 차례로 흥망되어 마지막으로 진(陳)이 지배하고 있었다. 수문제(隋文帝)로 알려진 양견이 진을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바다같은 거대한 양즈강이 천연의 요해로 가로 막고 있어서 쉽게 군사를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양견(楊堅)은 양즈강 도하를 겁내는 부하장수에게 ‘한줄기 옷의 띠와 같은 좁은 강물(一衣帶水)을 그렇게 겁을 내느냐’고 하면서 52만의 대군을 움직여 강을 건너 진을 멸망 시켰다. 그 이후 일의대수(一衣帶水)는 강이나 바다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한중(韓中)간과 한일(韓日)간은 정말로 옷의 띠와 같은 좁은 바다로 나누어져 있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신묘년의 구랍 12월에 들어와서 일의대수에 거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12월12일 서해에서 불법어로를 단속하던 한국 해양경찰이 중국 어선의 선장이 찌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해양주권 침해”라고 격렬한 반중시위가 이어지고 중국에서는 유감을 표명하였지만 한국의 과도한 진압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이틀 후 14일에는 1000회의 수요집회도 불구하고 종군 위안부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일본정부에 항의로 정대협에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평화비를 세웠다. 12월17일 교토의 한일정상 회담장에서도 위안부문제가 회담의 중요내용이 되었다. 한중및 한일의 일의대수에 거친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12.19 북한의 김정일위원장의 급사 발표로 중국의 불법어선은 사라지고 일본의 평화비 철거 요청도 쑥 들어갔다.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등 한반도 위기관리에 중국과 일본등 관련국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번 12.25부터 노다(野田) 일본총리가 방중하고 2012년 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되어 있다.

내년부터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을 앞두고 있다. 한중 및 한일관계는 정치안보 방면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관계이기도 하다. 일의대수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의 한중일의 이웃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여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할 때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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