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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할아버지께 … 굴렁쇠 소년, 23년째 성탄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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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6일 JTBC ‘8020 이어령 학당’ 녹화장에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굴렁쇠 소년’ 윤태웅(오른쪽)씨가 출연, 이어령 전 장관과 옛 추억을 나눴다. 윤씨는 올림픽 개막식으로 맺어진 인연을 20년 넘게 이어오며 성인이 됐다. 이날 녹화분은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에 방영된다. [조문규 기자]

‘이어령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2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착했다. 삐뚤빼뚤 글씨가 또박또박 정갈해지며 소년도 성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를 굴리는 이벤트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굴렁쇠 소년’ 윤태웅(30)씨는 어느덧 장성해 배우가 됐다.

 당시 개막식 굴렁쇠 아이디어를 냈던 이어령(77) 전 장관이 윤태웅씨와 만난 자리에서 둘 사이의 오랜 인연을 공개했다. 16일 JTBC ‘8020 이어령 학당’ 녹화장에서다.

 이 전 장관은 “태웅군이 하얀 반바지를 입고 흰 운동 모자를 쓰고 나와 반짝이는 굴렁쇠를 굴릴 때, 정말 전세계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전쟁 직후의 나라에서 구걸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자유롭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줬던 거다. 그 아이들이 이제 20대가 되고 나는 80대가 됐다. 감개무량하다”고 돌아봤다. 또 당시 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들고나와 “20년 전에도 나에게 ‘할아버지’라고 했는데 그게 참 섭섭했다”고 해 객석의 웃음을 끌어냈다.

 진행을 맡은 박윤신 아나운서가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느냐”고 묻자 윤씨는 “왼손잡이였는데 오른손으로 굴리라고 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웃었다.

 윤태웅씨가 특별 손님으로 출연한 ‘8020 이어령 학당’은 20대와 80대가 소통하는 자리다. 이어령 전 장관이 매주 다른 주제로 이끌어가는 JTBC 교양 프로그램이다. 이날 녹화의 주제는 숫자 ‘8’이었다. 함께한 10여 명의 20대 청년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서 이 전 장관이 이끌어낸 키워드는 눈사람. 윤씨의 시 낭독으로 강의가 시작됐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해 (…)나도 모르는 새 ‘눈사람 죽이기’로 시작한 어른이 된 거지.”

 눈사람을 만드는 대신 파괴하기 시작한 순간, 우리는 어른이 돼간다는 내용으로 이 전 장관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아마 어린이들이 최초로 겪는 겨울의 좌절은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녹고 까매지고 사라진다는 것이겠죠. 어린이들은 양동이를 눈사람의 모자로 쓰는 식으로 의미 체계를 바꿔가며 놀죠. 그렇게 의미 체계를 바꾸는 창조적 놀이를 눈사람 만들면서 느꼈던 건데, 어른이 되며 그걸 잊어가는 겁니다.”

 눈사람을 각자 그려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 전 장관은 좀 더 과감히 의미체계를 바꿔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눈사람 시스템’으로 늘 생각하라는 것. 눈사람을 만들 때 옥수수가 입이 되고 빗자루가 팔이 되는 것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물건을 ‘다른 의미’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이 21세기를 만들어가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8020 이어령 학당’은 매주 일요일 오전 7시5분 JTBC에서 방영된다. 윤태웅씨가 출연한 이날 녹화분은 25일 방영된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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