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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힘 준 주몽 잊은지 오래…양파 까다 손가락 까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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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드라마 ‘발효가족’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매회 등장하는 색다른 김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태 역의 송일국은 “촬영하며 밥을 세 그릇씩 먹을 정도로 맛있다 ”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고운 매화김치,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고들빼기김치,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 치자미역말이김치…. 여기에 갓 지은 밥이 차려지면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다.

 밥상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만 정겨운 게 아니다. ‘천지인’ 식당을 운영하는 이 가족, 식당 손님이 아니더라도 절대 굶겨 보내는 법이 없다. 버려진 갓난아기에게 죽을 먹이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꼬마에게 밥을 먹인다. ‘먹다’와 ‘먹인다’ 사이의 ‘인’이 인간사회의 마땅한 ‘인(仁)’이라는 듯이.

 이 식당을 중심으로 ‘밥상공동체’를 그려내는 JTBC 수목드라마 ‘발효가족’. ‘사람냄새 가득한 따뜻한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기의 중심에는 호태 역을 맡은 배우 송일국(40)이 있다. 보육원에서 자라 조직폭력배 중간보스가 됐다가, 천지인 식당에 흘러 들어온 호태는 여린 마음을 감추려 되레 거친 모습을 보여준다. 15일 전북 완주 세트장에서 그를 만났다. 양파·오이·파 등 이런저런 식재료를 다듬은 그의 손은 ‘주방보조’답게 까칠해져 있었다.

 -위풍당당했던 예전 모습과 사뭇 다르다.

 “아직도 ‘주몽’으로 먹고 산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그 이미지가 강하다. 얼마 전 찾은 미얀마에서는 거의 국빈 대접을 받았다. 팬 사인회를 하는 날, 그 인기를 정말 실감했다. 빠져 나오지 못할 만큼 인파가 몰렸다. 이란에 갔더니 호텔 앞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들어 테라스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었다. 그런 (사극) 이미지가 너무 강해 고민하던 중 이 작품을 만났다. 행운이다.”

 -스스로 어색하지 않나.

 “왕(드라마 ‘주몽’) 노릇 하다가 내려와서 경찰(강력반)을 하다가 더 내려와서 이젠 조폭이다. (웃음) 폼 잡다가 망가지는 건데, 처음엔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게 힘들었다. 뭘 노려보는 장면에서조차 폼을 잡다가 이제는 막 쭈그려 앉아 양파껍질을 깐다.”

호태 역의 송일국(왼쪽)과 강산 역의 박진희.

 극중 호태는 절대미각을 가진 인물. 드라마에선 호태가 파프리카 김치를 맛보며, 가족과 나눴던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강렬한 맛의 기억이 그에게도 있을까. 그의 어머니, 배우이자 국회의원인 김을동(66)씨 이야기가 나왔다.

 -늘 바빴던 어머니가 해준 음식이라면 각별했을 것 같다. (※김씨는 최근 에세이집 『김을동과 세 남자 이야기』를 내고 아들을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놨다.)

 “카레를 정말 좋아하는데 어머니께 심하게 혼난 날이면 늘 카레를 먹었다. 어머니가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꼭 직접 만들어주셨다. 드라마 찍으며 카레 생각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시는 게 너무 부러웠는데, 그런 면에서 호태가 이해가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없이 진행되는 촬영,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 그래도 촬영장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여러 재료가 섞여 좋은 김치가 나오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는 얘기거든요. 이 드라마 끝나면 아마 저도, 시청자도 ‘발효’해 있을 겁니다. ‘천지인’이 말하는 가치를 되새기면서요.”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발효가족’ 말말말

▶강산(박진희)과 우주(이민영)가 매화김치를 만들며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

어머니=당근은 무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자기도 모르게 무에 있는 비타민C를 막 없애버려. 그래서 당근은 무척 슬펐어. 그런데 이 감식초가 둘 사이를 화해시켜준 거야. 꼭 기억해. 너희 둘이 힘들 때 이 감식초 같은 사람만 있다면 다시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강산이 장맛을 보며 아버지를 추억하는 장면

아버지=맛이 어때?

어린 강산=맵고 달고 짜고 맛있어요.

아버지=시간이 지나면 더 맛있어질 거야. 우리 강산이가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는 것처럼 된장도 고추장도 김치도 어른이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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