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김정일 뇌졸중 뒤 치밀하게 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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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앞줄 왼쪽)이 20일 베이징 북한대사관을 찾아 박명호 북한 대리대사에게 조의를 표하고 있다. 뒷줄 왼쪽 둘째부터 함께 조문 온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신화통신=연합뉴스]

김정일 사망이란 돌발 사태에 중국 지도부가 기다렸다는 듯 발 빠르게 대응 카드를 내놓고 있다. 북한 선점을 노린 듯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모양새다.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전 외교안보연구원 중국 담당)는 20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팀장을 맡고 있는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차원에서 사전에 마련한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응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이는 모습이란 걸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 김정일 사망 발표 첫날 김정은 체제에 지지 선언을 한 데 대해 ‘김 위원장 유고라는 비상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계산된 메시지를 미국·한국·일본에 보낸 것으로 풀이했다.

 실제로 중국은 사망 소식이 나온 지 약 4시간 만에 외교부가 나서 애도 논평을 발표했다. 또 당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후진타오 총서기), 전국인민대표대회(우방궈·吳邦國 상임위원장), 국무원(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당중앙군사위원회(후진타오 주석) 등 4개 권력기관 명의로 북한에 애도 전문을 신속히 발송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 입장을 천명했다.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북한의 후계 지지를 김정일 사망 발표 당일에 선언하는 과단성을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외국의 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도 중국은 북한과 신속히 조율해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일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을 전격적으로 찾아 조문하도록 했다. 중국으로선 특별 예우를 받은 셈이다.

 중국 지도부는 앞으로도 북한의 안정이 국익에 절대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북한 내부와 주변의 정세 변화를 지켜보면서 사전 준비한 대응 카드를 뽑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량 탈북 사태를 막고 북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조만간 식량지원 같은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와 함께 정치국 위원급이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 또는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 등 고위급 인사를 북한에 파견하고, 주변국가들과는 외교적 공조 노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의 의중을 반영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0일자 사설에서 “북한이 맞을 비바람을 중국이 막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한 중국 소식통은 “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처음 쓰러진 시점부터 중국 당국은 김 위원장의 부재 가능성을 예의주시해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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